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이어 두 자릿수 인상…노사 모두 반발

고용지표 악화에 '인상 속도조절'…현정부 임기 내 1만원 실현 여지는 남아
노동계 "희망적 결과 안겨주지 못해" vs 경영계 "소상공인 존폐 기로"
최저임금위원회가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천350원으로 결정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정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올해 들어 눈에 띄게 악화한 고용지표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최저임금위는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유지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기조는 이어갔다.

◇ 인상 속도조절…'2020년 1만원' 공약 달성은 어려울 듯
최저임금위의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는 예년과 같이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 9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들 공익위원은 사용자위원 9명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근로자위원 5명과 함께 표결을 통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했다.

표결에서 채택된 것은 공익위원이 내놓은 안이었다.

최저임금위의 공익위원은 정부 위촉을 받은 전문가 등으로, 대체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최저임금 결정 시한이 임박한 지난 1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가기보다 최근 경제 상황과 고용 여건,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 시장에서의 수용 능력을 감안해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혀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이 속도조절로 기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김 부총리 발언을 의식한 듯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발언,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감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속도조절 전망은 여전히 우세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에 힘이 실린 데는 올해 들어 '일자리 쇼크' 수준으로 악화한 고용지표의 영향이 컸다.통계청이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사흘 앞둔 지난 11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증가 폭은 5개월 연속 10만명 안팎 수준에 머물러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흐름을 이어갔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경영계의 인건비 부담을 늘려 고용 감소를 초래했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김동연 부총리의 12일 발언도 고용 부진에 관한 설명 중 나온 것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초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감소 효과가 최대 8만4천명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 전원회의는 작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대선 직후인 작년 7월 최저임금위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속에 17년 만에 가장 큰 폭인 16.4% 올려 7천530원으로 결정했다.

당시 사용자위원 일부가 퇴장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시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고용지표가 눈에 띄게 악화하고 그 원인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탓이라는 주장이 대두하자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정부 내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 필요성이 제기됐고 문 대통령도 지난 5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이 올해보다 5.5%포인트 낮은 10.9%로 결정됨에 따라 문 대통령의 공약도 수정이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가정하에 올해와 내년 인상 폭을 같게 잡으면 이번에 최저임금을 15.2% 인상해야 했다.

근로자위원이 이날 전원회의 막판에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15.3% 오른 8천680원을 제시한 것도 2020년까지는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8천350원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2020년 1만원으로 올릴 경우 인상률은 19.8%나 된다.

고용지표 등이 크게 개선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반대론이 잦아들지 않는 한 최저임금위가 이 정도의 대폭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시점을 2020년에서 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으로 미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률…'노동계 달래기' 역부족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에 들어갔지만, 인상 폭을 두 자릿수로 유지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를 지킨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2005년 이후 13년 만이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작아졌지만, 2022년까지 실현할 여지는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의 반발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되, 인상률은 두 자릿수로 유지하는 제한적 속도조절을 함으로써 '노동계 달래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저임금위가 고육지책으로 경영계와 노동계 입장을 감안해 나름의 절충안을 내놨다는 시각도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포함한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반감된 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하는 것으로,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은 노동계를 달래기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3일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이 제출한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은 올해보다 43.3% 오른 1만790원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목표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줄어드는 노동자 기대소득의 보전분을 반영한 금액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사의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앞두고 내놓은 요구안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내년도 최저임금 8천350원은 이에 크게 미달하는 게 사실이다.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은 이날 최저임금위의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조속한 실현과 산입범위 개악에 대한 보완을 애타게 기대해온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희망적 결과를 안겨주지 못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높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사용자위원은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심각하다며 최초 요구안으로 동결을 제시했다.사용자위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어려워진 경제 상황과 악화하는 고용 현실에도 불구하고 10%가 넘는 고율 인상이 이뤄졌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