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園 누빈 이대원·설악에 빠진 김종학… 화려한 색채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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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이즈 10주년 기념전‘백운전후령(白雲前後嶺·앞뒤 산봉우리엔 흰구름)/ 명월동서계(明月東西溪·동서의 시내엔 밝은 달)/ 승좌락화우(僧坐落花雨·꽃비 떨어짐에 중은 앉고)/ 객면산조제(客眠山鳥啼·나그네 잠드니 산새 우네)’ 한평생 ‘꽃비’처럼 살다간 이대원(1921~2005년)과 ‘설악산 작가’로 유명한 김종학 화백(81)의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조선시대 고승 서산대사의 시 ‘화우(花雨)’다. 두 작가는 화려한 원색을 시적 내재율로 변주해 화면 전체를 생동감 넘치게 채웠다. 단순한 풍경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대상에 ‘포용과 풍류의 미덕’을 투영한 게 유별나다.
'이대원-김종학'展 18일 개막
한국 화단에서 ‘색채의 마술사’로 통하는 두 작가의 작품을 모처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오는 18일 개막해 30일까지 계속되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전 ‘이대원-김종학’을 통해서다. 세상과 떨어져 있지 않고, 삶의 외연인 일상과 자연을 화려한 색채미학으로 되살려낸 작품 17점이 걸린다.전시를 기획한 한수정 갤러리 이즈 대표는 “두 거장의 미의식을 통해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며 “제각각의 독창적인 화법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의 개별성과 공통점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전에 ‘화단의 신사’로 불렸던 이 화백의 ‘농원’ 시리즈는 여섯 점이 나온다. 삶의 희망과 환희가 ‘꽃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작품들이다. 흰구름 피어나는 야산, 생명이 움트는 들판, 풍요로운 과수원도 그의 붓끝에서는 빗줄기처럼 흘러내린다. 경쾌한 폴카처럼 리듬을 타고 아름다운 원색의 점과 색이 화폭을 적셔 들어간다. 색이 춤을 추며, 하늘에서 내려와 화면에 쌓인 아름다운 화음과 색의 중첩은 시각적으로 서정적이며 목가적이다. 미술평론가들이 그의 그림을 ‘서양 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고 격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화백의 그림들이 이렇듯 점묘법을 활용해 구상성이 돋보인 농촌 풍경을 담아냈다면, 김 화백의 작품 10여 점은 설악산의 야성미를 반추상 형태로 녹여냈다. 1979년 전위적인 실험미술과 추상화가 판치던 서울 화단을 떠나 설악산으로 들어간 그는 외설악 입구 설악동에 작업실을 차리고 40여 년간 화려한 원색의 그림을 쏟아냈다.설악산의 다양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담아뒀다가 작업실에서 하나하나 꺼내 마구 짜낸 물감으로 거칠게 찍어 발라 산세를 시적 운율을 더해 재구성했다. 아침 햇살에 물든 산수유와 맨드라미 진달래 들국화 나팔꽃 등이 활짝 웃고, 꽃무더기 속에선 나비와 벌, 새들이 소곤소곤 대화를 즐긴다. 거친 붓놀림이 원초적인 듯하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작품들은 마치 색채의 향연장을 방불케 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