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한수원이 교수들 줄 세우기 하나" 커지는 학계의 불안감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달 경북 경주 본사에서 ‘신사업 발굴 컨설팅 착수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수원 제공
탈(脫) 원자력발전소 정책의 중심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행보에 교수 사회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내 에너지기업 중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자금을 놓고서입니다.

지난 4월 취임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R&D 과제에 대한 전수 조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난달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를 결정한 뒤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 사장이 “이번 기회에 학계와 협력을 확대할 방안을 살펴보자”며 부연 설명했다고 하지만 학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지요. “탈원전 비판에 앞장서는 교수들과의 용역 계약을 해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 때문입니다.한수원의 R&D 예산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17개 공기업 중 최대 규모입니다. 올해 책정된 금액만 4750억원에 달하죠. 한국전력(4307억원) 한국가스공사(591억원) 한국전력기술(432억원) 한국동서발전(423억원) 등보다 훨씬 많습니다.

마침 정부에서도 한수원을 포함한 에너지기업들의 ‘과거 5년간 R&D 과제’에 대한 집행 내역 및 성과를 모두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예산 운영이 불투명하고 민·관 협력도 미흡하다는 판단에서였죠. 전(前) 정부 때 발주됐던 원전 관련 프로젝트 등 R&D 과제를 면밀히 분석해 추후 연구비 배분 때 참고하겠다는 겁니다.

에너지를 전공하는 상당수 교수들은 이 같은 한수원 및 정부 움직임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혈세나 다름없는 공기업의 R&D 자금을 갖고 학계를 줄 세우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지요. 기존 성과나 연구 능력에 따른 프로젝트 수주 분위기가 사라지고, 대신 ‘상아탑의 정치화’가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합니다.더구나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점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수원 내 원자력 발전 비중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규 투입할 R&D 자금은 종전과 달리 태양광 풍력 등 신사업에 많이 배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유일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운영업체인 한수원. 탈원전을 국정 기조로 내세우는 정부 정책에 발 맞추기 위해 R&D 내역을 전수조사하는 게 아니란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