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공청회… "진정한 스튜어드 되려면 기금 독립성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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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집사인지 대리인인지국민연금이 노후자금을 위탁한 국민들의 ‘스튜어드(집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독립성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황인학 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 공청회’에 참석해 “주인이 믿을 수 있는 ‘집사’와 언제든지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대리인’은 다른 개념인데, 국민연금을 집사로 볼 것인지 대리인으로 볼 것인지 확실치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도 부족하고 기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신중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금운용 방식 모호한 상황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신중해야"
투자기업 주주권 행사 관련
명확한 기준으로 예측가능성 높여야
복지부 "기업과 생산적 대화로
기금 수익성 제고하겠다"
26일 최종안 확정 시행
황 수석연구위원은 “‘정치 권력과의 이해상충 문제는 없을 테니 안심하라. 서약서를 받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독립성을 담보할 지배구조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독립성”이라며 “해외 연기금들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독립성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또 “스튜어드십 코드는 투자 행위이지 정치 행위가 아니다”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과도하게 배당 문제에 집중돼 있는데, 그보다는 일본처럼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 관점에서 모든 의결권과 주주권 행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기업들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준을 확실하게 제시해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우용 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 국민연금이 반대하겠구나’라는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준은 모호한 가운데 자세한 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판단하겠다고 하면 기업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전무는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수탁자 책임 활동에 대한 지침 기준안’에는 이사회 규모에 대해 ‘이사회 내 위원회 활동을 제약할 만큼 이사의 수를 제한하거나 개별 이사의 영향력을 무력화할 정도로 많은 이사를 두는 안에 반대한다’고 돼 있는데 너무 적어도 반대하고 너무 많아도 반대한다는 뜻”이라며 “국민연금이 생각하는 적정 이사 수가 몇 명인지 모호해 기업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의결권 결정 사항을 주총 이전에 공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박경종 한국투자신탁운용 컴플라이언스실장은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사전 공지는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무도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 투자자가 사전에 공표하면 다른 투자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결권 행사를 외부 자산운용사에 위탁하는 안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렸다. 박 실장은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운용사에 가점을 부여하는 건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정용건 연금행동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대기업이 주주로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면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고, 자본금이 20억원밖에 되지 않는 회사들이 주주권을 행사하기도 어렵다”며 반대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기업들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주주행동주의를 동일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라며 “지배구조에 별 문제가 없다면 긴밀한 대화를 통해 국민연금을 우군이나 백기사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최경일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업가치·주주가치 훼손 우려 기업과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돼 기금의 장기수익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은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오는 26일 확정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