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시장 10년 前과 다른데… 여전한 '원금 반토막'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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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재테크 리포트 길 잃은 중산층 재테크대기업에 다니는 권모씨(38)는 신문에서 펀드 기사를 볼 때마다 기분이 안좋다. 10년 전 악몽이 떠올라서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2007년 직장 동료들을 따라 적립식 펀드에 들었다. 고민 끝에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미차솔(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과 ‘봉차(신한BNP봉쥬르차이나)’를 택했다. 두 펀드를 합쳐 목돈 1500만원을 넣고 매월 30만원씩 부었다. 결혼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다. 하지만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펀드 자금은 1년 만에 반 토막 났다. 그는 “2011년까지 버티다가 결국 손실을 보고 환매한 뒤 펀드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3) 사라진 적립식 펀드 문화
글로벌 금융위기에 '털썩'
'미차솔' 등 中펀드 인기 끌며
2007년 주식형펀드 붐 일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손실 속출
직장인 40% "손실 경험에
과거엔 투자했지만 지금은 안해"
요즘엔 투자지역·전략 다양
포트폴리오 따라 안정적 투자 가능
대한민국 중산층 상당수가 비슷한 ‘펀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갖고 있다. 펀드시장 부침으로 손실을 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다.◆여전한 반 토막 트라우마
2000년대 중반 펀드 열풍은 대단했다. 적립식 투자는 ‘재테크 필수품’이었다. 직장인들은 매달 월급에서 30만~100만원씩 떼서 적립식 주식형펀드에 투자했다. ‘저축의 시대’는 저물고 ‘투자의 시대’가 오는 듯했다. 공모펀드는 2007년 말 222조7698억원(순자산 기준)으로 3년 만에 2배 이상 커졌다. 증시는 한동안 상승세를 타며 투자 열기에 보답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도 뜨거웠다.하지만 예상치 않게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잘나가던 펀드 수익률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났다. 곳곳에서 곡소리가 났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2008년 평균 39%의 손실을 봤다. 투자자들은 수년 동안 환매도 못하고 참고 견뎌야 했다.
한국경제신문이 미래에셋은퇴연구소와 공동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중산층의 펀드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근로소득자 1021명 응답자의 44.1%가 ‘과거에 펀드 투자를 했지만 현재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펀드 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중에서 ‘손실을 입었다’는 비율은 40.3%에 달했다. 재테크로 가장 비선호하는 저축·투자 수단을 묻는 질문에 펀드 등 간접투자를 꼽은 응답자가 36.1%(복수응답)였다. 서유석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사람들이 한창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시장이 성장할 무렵 금융위기가 터진 영향이 컸다”며 “선진국 투자자들은 몇 차례 위기를 겪어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수익률이 회복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펀드 없인 포트폴리오 못 짜펀드에 ‘원죄’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펀드를 빼면 가계자산 포트폴리오 자체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게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얘기다.
펀드 시장은 10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국내 주식펀드와 중국 주식펀드 일색이었다. 최근에는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도 다양해졌고, 투자지역도 베트남,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다변화됐다. 미국 4차 산업혁명 펀드 등 선진국 시장의 테마에 특화된 펀드도 많다. 해외부동산, 원자재 등 대안투자형 상품도 많아졌다. 해외 주식형 펀드의 지난 5년간 평균 수익률은 40%에 달했다.최소한 ‘부동산 갭 투자’나 코스닥 테마주 투자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투자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펀드를 고른다면 실패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직접투자의 위험을 줄이고 가계자산을 효율적으로 분산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펀드는 여전히 중요한 투자 수단”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공모펀드 부활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퇴직연금에서도 펀드 외면 현상은 심각하다. 전체 적립금에서 펀드에 투자하는 비중은 8%에 불과했다. 미국의 경우 주식형 펀드 자산 중 60% 이상이 퇴직연금을 통해 유입됐다. 주소현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과거처럼 단순히 높은 수익률을 바라고 가입하기보다는 펀드로 투자 대상을 다양화해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싶어 한다”며 “투자지역, 투자전략 등을 더 다양화한 상품이 출시돼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