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미다스의 손 (2)] 박혜진 "투고함 밑바닥까지 뒤진 치열함의 선물이죠"

박혜진 민음사 차장

'82년생 김지영' 85만부 기염
출간 2년째에도 소설 2위 랭크
꼼꼼한 투고관리 시스템의 승리
이문열 조정래 황석영 박경리…. 한국 문단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소설은 대개 대하소설이었다. 이 같은 역사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녔지만 최근 밀리언셀러를 앞둔 작품이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다. 이 책은 1982년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며 그가 겪었던 편견과 성차별을 담담히 보여준다. 김지영의 삶에 깊이 공감한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이 책은 85만 부가 팔려나갔다. 2016년 10월 출간된 책이지만 아직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5위(18일 기준), 소설부문 2위에 올라 있다. 일본 대만 베트남 등에도 판권이 팔렸다.

《82년생…》은 한국에 페미니즘 바람을 몰고 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지만 자칫 출간되지 못할 뻔했다. 조 작가는 이 작품을 민음사의 투고 메일함에 보냈다. 투고함에서 잠자던 이 작품을 발견해 책으로 만들어낸 건 이 책을 책임편집한 박혜진 민음사 차장(사진)이다.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차장은 “1차 투고담당자가 앞부분을 읽어봤는데 재미있다며 검토해보라고 넘겨준 원고였다”고 말했다. “쉽게 읽히는데도 공을 많이 들이고 공학적으로 잘 쓰인 소설이라고 판단해 당장 원고를 들고 작가를 만났습니다. 편집자로선 항상 장르를 파괴하는 작품을 작업해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는데 르포와 소설의 경계점에 있는 이 작품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출판계에서 투고한 원고가 실제 출간까지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바쁜 편집자들이 긴 원고를 다 읽어볼 시간도 없고, 투고 원고는 대개 출간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다. 이 작품이 발견될 수 있었던 건 민음사의 철저한 투고 관리 방식 덕분이기도 하다. “한 달에 30편 넘는 소설이 투고돼요. 대부분 원고를 담당자들이 이중 검토하고, 출간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써서 팀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붙은 제목도 박 차장의 작품이다. 애초 조 작가가 가져온 제목은 ‘19820401 김지영’이었다. 그는 “세대론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82년생’이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생 여성들은 대학 졸업까진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믿었다가 사회에 진출한 뒤 여러 가지 성차별을 겪고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면서 좌절하는 독특한 경험을 지닌 세대예요. 이들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제목을 달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돼버렸네요.”그는 이 책을 편집하면서 8000부쯤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책은 그의 예상보다 100배가 더 팔렸다. “책을 읽은 독자들의 자발적인 홍보가 가장 큰 힘이었다고 봅니다. 이 책의 큰 장점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게 하는 책’이라는 거예요. 조 작가는 성(性) 감수성과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인 거죠. 국회의원들의 추천이 책 판매 실적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추천 또한 책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