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세심한 설계 필요한 최저임금 인상

'더 나은 삶'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누군가 죽이는 제로섬 게임 돼선 안돼

문혜정 중소기업부 차장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또다시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논란이 거세다. 분명 누군가는 이로 인해 이익을 얻고, 또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 텐데 불만의 목소리만 들리는 듯하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급격한 인상에 반발하고, 알바노조 등은 2020년 1만원 달성이 어렵게 됐다며 대통령의 공약 파기를 비난한다. 이 논란을 보면서 오래전 미국에 있을 때 일이 떠올랐다.

1997~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한 대학에서 1년간 체류할 기회가 있었다. 1997년 8월, 미국으로 출발할 때 달러당 9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그해 연말 1900원대로 급등했다. 짐을 싸는 유학생이 속출했다. 학교 측의 배려로 외국인 유학생 및 어학연수생 일부는 합법적으로 교내 카페테리아나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법정 최저임금의 개념은 아니었지만 지역에서 통용되던 시간당 임금은 6달러 안팎. 당시 한국의 시급은 1400원대였다. 수업이 없는 틈틈이 한두 시간씩 책을 정리하거나 설거지, 물건 진열, 계산대 업무를 했다. 하루 4~5시간, 주 4~5일의 아르바이트로 최대 월 600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침실이 2~3개인 집을 여러 명이 빌려 방 하나씩 사용하며 집세와 각종 관리비를 공동 분담했는데 그 돈으로 방세를 내고 교통비, 식비를 혼자 감당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당 노동의 대가를 높게 쳐주는 잘사는 나라여서 좋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2018년 한국의 아르바이트생이나 일용직, 계약직 등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아 월급이 오르는 직업군에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산업계의 실핏줄에 해당하는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만나보면 최저임금 문제에 모조리 비관적이다. 막막하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물건은 안 팔리는데 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원자재·인건비·임대료·마케팅 비용은 동시에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직원의 생산성이 기대만큼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00~2017년 중소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매년 평균 3.6% 상승한 데 비해 최저임금은 연평균 8.6% 올랐다”고 밝혔다. 지난해 노동생산성은 2000년의 1.8배에 그쳤지만, 2017년 최저임금(7530원)은 2000년 최저임금의 4배다. 기술 혁신, 해외시장 진출 및 시장 다각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딸린 가족과 직원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과거 저임금의 과실을 따 먹은 경우라면 더 힘들다. “경기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사람을 뽑아? 채용하기 무서워요.” “다들 할 수만 있다면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들 하지.” “당장 하반기부터 장기 불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에요.”

경기 전망도 좋지 않은 어려운 시기에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을 비롯해 인건비 보조, 임대료 인하,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수료 인하, 대기업-중소기업 공정거래 관행 확립 등 최저임금 인상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최저임금은 매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정부가 의도한 대로 소득 증가에 따른 내수 활성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자리 감소와 경제활력 저하로 귀결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정부도 기업인도 근로자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것은 똑같다. 살자고 하는 최저임금 인상이, 누군가를 죽이는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설계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