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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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MS 거친 34년 IT 베테랑세계 최대 커피체인 스타벅스는 커피뿐 아니라 무료 와이파이, 모바일 주문·결제, 선불식 충전카드 등 고객 서비스에 정보기술(IT)을 적용한 ‘디지털화’로도 유명하다. 시간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와 콘센트는 카공(카페 공부)족, 코피스(커피+오피스)족을 만들어내며 ‘커피가 아닌 문화공간을 판다’는 스타벅스의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치가 됐다.
무료 와이파이, 모바일 결제·주문…
커피에 '디지털 문화'를 입히다
끝없는 혁신으로 미래 실험
주문 충전 결제를 앱으로 통합
모바일 결제비중 30%로 늘려
'현금없는 매장' 도입 확대
창업자 슐츠로부터 홀로서기
중국 매장 2022년 6000개 목표
茶 전문매장 티바나는 모두 폐쇄
가족과 팀의 소중함 강조
보물 1호는 증조부의 회중시계
농구 감독 존 우든 자서전 읽고
개인보다 팀의 중요성 깨달아
지난해 4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케빈 존슨(58)이 스타벅스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도 와이파이였다. 2001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명예회장(당시 CEO)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에게 스타벅스 매장에 와이파이를 제공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이 일의 실무를 맡은 MS 직원이 바로 존슨이었다.디지털화 이끌 수장으로 발탁
존슨은 그로부터 8년 뒤인 2009년 스타벅스 이사회 임원이 됐고, 2015년엔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그리고 2016년 12월 슐츠 명예회장은 “나보다 훨씬 준비된 경영자”라고 존슨을 소개하며 30년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스타벅스 1호점 열쇠를 넘겨줬다.
존슨은 스타벅스의 디지털·모바일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스타벅스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폐쇄하고, 주문과 선불식 충전·결제, 리워드 프로그램을 하나의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통합했다. 미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이뤄지는 결제의 30%가 이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스타벅스 고객들이 선불로 충전한 금액은 12억달러(2016년 기준)에 달한다.스타벅스는 최근 '현금 없는 매장' 도입을 확대하는 등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IBM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시작해 MS, 주니퍼네트웍스를 거치며 34년을 IT업계에서 보낸 존슨이 CEO로 발탁된 이유다. 그는 “사람들을 움직이고 고객을 연결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창업자의 전설’ 이어갈까
존슨이 CEO에 오른 지 1년이 지났지만 창업자인 슐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중요한 성과와 위기의 순간엔 슐츠가 전면에 나서곤 했다. 지난해 말 중국 상하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고급 원두 특화매장인 ‘리저브 로스터리’의 문을 열었을 때도 슐츠가 등장했고, 지난 5월 미국 필라델피아 매장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슐츠가 나서 사태를 수습했다. 지난달 4일 슐츠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자 주가가 9%나 빠졌을 정도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타벅스 CEO가 회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슐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라며 시장의 과민 반응을 꼬집었다.존슨과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그의 결단력을 높이 산다. NYT는 “그들은 존슨 CEO가 이미 스타벅스 사업을 단순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일련의 결정을 내린 것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존슨은 CEO에 취임한 뒤 스타벅스의 중국 합작기업인 상하이퉁이(一)스타벅스커피유한회사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장쑤(江蘇)성과 저장(浙江)성 내 스타벅스 매장 1400곳의 사업권을 확보했다. 스타벅스는 2022년 말까지 중국에 6000개의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또 차 전문 브랜드인 티바나 매장 379곳은 전부 문을 닫기로 했다. 타바나는 쇼핑몰에 매장을 두는 차 전문 브랜드로 2012년 스타벅스가 인수했지만 오프라인 쇼핑이 줄어들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바람에 대표적인 슐츠의 실책으로 꼽혔다. 존슨은 네슬레와도 손을 잡았다. 스타벅스는 최근 네슬레와 계약을 체결, 72억달러에 캔커피 커피콩 등 패키지 상품 판매권을 넘겼다.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존슨에게) 전설적인 창업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에 이어 MS의 세 번째 CEO가 된 그는 지난해 1월 스타벅스 이사회 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나델라 CEO는 “빌과 스티브로부터 받은 최고의 조언을 존슨과 나눴다”며 “그들은 ‘우리가 되려고도 하지 말고, 우리 자리를 대신 하려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존슨은 슐츠가 아니다”며 “하지만 슐츠에게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팀은 개인보다 강하다”
존슨은 주니퍼네트웍스 CEO에서 스타벅스 COO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건강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가 2014년 주니퍼네트웍스에서 CEO를 맡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건강검진 중 피부암이 발견됐다. 1년 정도 CEO직을 유지하며 치료를 받던 그는 회사 일 때문에 병원 예약을 미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이것이 그가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존슨 CEO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일에 시간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스타벅스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하워드(슐츠)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대신 두 살짜리 손자를 보러 가기도 했다”며 “10년 전, 20년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존슨의 보물 1, 2호는 의외로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하나는 그의 증조부가 남긴 회중시계다. 그의 집안에선 ‘끈기와 근면의 상징’으로 통한다. 다른 하나는 2001년 출간된 존 우든 UCLA 농구팀 감독의 자서전 《민첩하게, 그러나 서둘지는 마!》이다. 존슨 CEO는 “모든 것을 존 우든으로부터 배웠다”며 “UCLA 농구팀이 언제나 팀으로서 경기에 임했다는 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멕시코주립대 재학 시절, 대학농구 선수로 뛴 경력이 있다. 그는 “팀의 힘은 팀 내 어떤 개인의 힘보다 크다”며 “(스타벅스의 리더십 변화도) 하워드에서 나로의 전환이 아니라, 하워드에서 팀(경영진)으로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