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의 대한상의 회장 '작심 비판'…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기업 의욕만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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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제주포럼서 정부 양극화 해법 비판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이 ‘작심 발언’을 했다. ‘기업 심리를 위축시키는 대표적인 정부 정책’을 묻는 말엔 주저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 비판을 꺼렸던 그간 행보를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경제는 심리인데…
영세 자영업자·노동자
모두 반대하는데 굳이
최저임금 인상 필요했나
규제혁파 외쳤지만 자괴감만…
규제 10여개 어렵사리 풀었는데
다른 쪽서 수백개 쏟아져
과감한 규제혁파·경기부양 시급
박 회장은 지난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 개막식에 맞춰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처럼 경제 심리를 악화시키는 경제 정책은 당분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과감한 경기 부양과 파격적인 규제 완화도 주문했다.◆“양극화 해법이 틀렸다”
박 회장은 양극화 해결을 위해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정부의 현실 인식엔 동의했다. 하지만 해법은 달랐다. 그는 “영세한 소상공인과 그 소상공인에게서 월급을 받는 근로자 간 최저임금을 놓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논쟁이 계속되면 소비 경기가 어려워지고 이를 바라보는 기업들도 점차 경기가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박 회장은 이어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등으로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꾸 이런 노이즈(소음)가 생기면 기업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굳이 영세 상공인과 영세 노동자가 모두 반대하는 경제 정책을 쓸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대신 “최저임금 인상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직접적인 분배 정책을 과감하게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보전을 위한 재원을 영세 기업인에게 부담시키지 말고 차라리 정부 재정에서 마련하자는 의견이다. 정부 주도의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과거 경험을 보면 확실히 민간 경기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20대 국회, 기업 규제법안만 800건”
박 회장은 규제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자 그간의 정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5년간 (규제 완화를) 절박하게 얘기했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낀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박 회장은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규제 법안이 약 800건 쏟아졌고 현재도 발의 중”이라며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규제 열몇 개를 풀었는데 다른 한쪽에선 백 개씩 쏟아진다. (기업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규제총량관리제도와 같은 제도적 개선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규제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박 회장은 우려했다.빅데이터, 인공지능(AI)과 같은 신산업 규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미국의 한 지방 택시회사는 고객의 직업, 나이, 거주지, 위치 정보, 생활패턴 등 다양한 데이터를 검토해 택시 배차를 요일과 계절별로 달리한다”며 “택시 회사는 빈 차로 다니지 않아 이득을 보고 소비자는 쉽게 차를 탈 수 있어 좋은데 한국에선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런 정보를 기업들이 취급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흐름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국경을 넘나드는 빅데이터 시장을 두고 세계 기업들이 협업할 때 한국 기업은 정부의 복잡한 규제 체계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서도 여러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기업 일탈행위를 막겠다는 정부 재벌개혁 정책이 국내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훼손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문제로 (기업이 정부에 불려가) 자꾸 조사를 받게 되면 불편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수술(법)로 해야 할 일과 운동(자율 규범)과 약 처방(시장 감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