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개인주의와 인문학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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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 < 카페24 대표 jslee@cafe24corp.com >한국은 갈등 비용이 높은 사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상 조사에서 늘 사회 갈등 지표가 높게 나온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수백조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 사회의 갈등이 깊어진 배경에는 유례없는 압축적 경제 성장이 있다. 20년간 기업을 경영하며 경제 성장의 한가운데 있던 나 역시 가끔 돌아볼 때면 그 발전 속도에 새삼 놀란다.
선진국은 큰 틀에서 유사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 먹고사는 게 당면과제인 시대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똘똘 뭉치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다. 생산력 향상으로 기본 의식주가 해결되면 전체보다 개인이 부각되는 사회로 바뀐다. 공동체의 목표보다 개인의 개성이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사회가 다양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회마다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이 정착된다. 한국에선 마케팅 용어로 자리잡은 듯한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 등이 이런 개념이다.서구 선진국은 이런 발전 단계를 수세기에 걸쳐 밟아왔다. 반면 압축 성장한 한국은 다양한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잘살아보세’라는 산업역군 세대와 방탄소년단 같은 글로벌 한류를 이끄는 세대가 한집에 사는 것이 일상이다. 이들은 살아온 방식과 가치의 기준이 달라 서로 협의점을 찾기 힘들 때가 많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인문학적 소통과 합리적 개인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화두가 돼 온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갑질로 대표되는 권위적이고 비인격적인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는 한 방편으로 인문학적 소통이 제기되고, 경직된 전체주의 문화와 과밀집된 도시화에 대한 반감으로 개인주의가 부각되는 듯하다.
이 둘은 얼핏 모순돼 보인다. 하나는 집단 내 소통을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한다. 이 역시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해 소통과 독립이라는 요구가 동시대에 표출되는 현상이다.개인 차원에서는 개인주의와 인문학적 소통을 동시에 추구하기보다 가치관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현명하다.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사람은 합리적 개인주의를 먼저 추구하는 게 좋다. 반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충만함이 중요한 사람은 인문학적 소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대개의 사회 문제는 시스템 개선과 구성원 인식 변화가 동반돼야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고비용 갈등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인문학적 소통과 합리적 개인주의가 빠르게 정착되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