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새벽, 458개 계단 오르면… 쿠바의 原色이 꿈틀댄다

여행의 향기

낭만이 넘치는 쿠바여행 (5) 올긴주
쿠바는 원색의 섬이다. 자연도 도시도 강렬한 원색이 흘러넘친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그 안의 핏빛이 달라질 리가 있을까? 그럼에도 쿠바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넘치는 총천연색의 유치한 색감이 우리를 잡아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숨어있던 날 것의 욕망이 도처에 넘실댄다. 쿠바에서의 여정을 반 정도 보내면 어느 도시를 가나 비슷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오래된 연인 관계처럼 살짝 여행이 지겨워질 매력적인 도시를 만나게 된다. 올긴이란 도시다. 야트막한 언덕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다. 도시뿐만 아니라 주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그 시선 아래 원색의 유혹이 펼쳐진다.

라 로마 데 라 크루스의 매력적인 노을올긴주는 아바나에서 760㎞ 남동쪽에 있다. 시내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쿠바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메인 광장에 극장이나 미술 갤러리, 지방 미술관, 성당,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아바나와 산티아고 데 쿠바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인구는 100만 명을 약간 넘는다. 규모는 쿠바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이 지역 면적은 9300㎢가 넘는데, 그중 25%가 숲으로 덮여 있다. 올긴은 볼거리가 다양하다. 높은 산, 비옥한 평야, 고운 모래 해변이 조화롭다.

언덕 위에서 도시의 랜드마크인 ‘라 로마 데 라 크루스’를 만날 수 있다. 마세오 거리 북쪽 끝에는 1950년에 지어진 458개 계단이 길게 연결돼 있다. 이 계단(275m)을 올라가면 파노라마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정상에는 식당, 24시간 바 등의 시설이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인력거 택시로 갈 수도 있다. 빛이 깨끗하고 온도가 더 낮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노을이 도시를 물들일 무렵 산책을 떠났다. 풍부한 색감의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긴주의 랜드마크인 라 로마 데 라 크루스 언덕 위 십자가를 지고 있는 청동상
교황과 장군 동상이 세워진 이색도시

산 정상에는 오래된 십자가와 십자가를 지고 있는 청동상이 있다. 이곳에 있는 십자가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1790년에 세워졌다. 십자가가 세워진 이후 ‘5월의 순례제’ 기간에는 열성적인 신도들이 정상에 올라 특별한 미사를 올린다.거리에는 식민지 시대풍 건축물이 남아 있다. 1976년 이전에는 오리엔테주에 속했다. 오리엔테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지역으로 나뉘면서, 올긴시는 이 지방 수도가 됐다. 맥주 외에도 주요 산업은 농업과 니켈이다. 이 도시는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마약 재활 병원이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도 친분이 있는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마라도나도 치료를 위해 이곳 병원에 2000년도 왔다. 이 도시의 원래 건축물 중 하나인 산 이시도로 성당은 1720년에 지어졌다. 눈부시게 하얗고 쌍둥이 돔 빌딩으로 특징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건축물이 더해졌는데 이 타워들은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초현실적인 동상이 정문 바로 옆에 서 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올긴의 도심에 우뚝 서서 도시의 얼굴 역할을 한다.

쿠바 여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올긴의 광장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장군 동상을 세웠다. 칼리스토 가르시아. 그는 올긴에서 맘비사 군대(Mambisa forces)를 이끌었다. 3개의 주요한 봉기에 참전했다. 독립 10년 전쟁과 1895년 전쟁에서 활약한 칼리스토 가르시아는 쿠바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동상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쿠바인들은 올긴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가르시아 장군 동상을 세웠다. 그의 가장 큰 동상이 아바나의 베다도 지역 말레콘 옆에 있다.
1720년 짓기 시작해 1979년 완성한 이시도르 성당
카스트로 가족의 출생지 비란

올긴은 도심을 걸으며 올망졸망한 식민지풍 건축물을 감상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좋은 도시다. 교복 입은 학생들과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여행자들은 그리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올긴에서 도심을 둘러보고 십자가가 서 있는 높은 언덕에 올랐다면 눈앞에 푸르고 높은 산맥이 펼쳐지는 비란을 들러야 한다. 비란은 향년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피델 카스트로 출생지다. 피델의 부고를 띄운 뉴욕 타임스의 SNS 문구가 인상적이다. 혁명을 이끌고 독재자로 살다간 그를 ‘미국 대통령 11명의 숙적’이었다고 표현했다. 피델은 1926년 쿠에토 남쪽의 비란 마을 근처의 핀카 라스 마나카스에서 태어났다. 비란은 1915년 피델의 아버지인 앙헬이 구입한 넓게 뻗어 있는 목장 인근의 노동자 마을이다. 주로 아이티 노동자들을 위한 작은 초가집이 생겼다. 무성한 삼나무로 둘러싸인 몇 채의 크고 노란 나무집들은 카스트로 가문을 이루었다. 피델의 아버지는 93㎢의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1976년 도시 개혁 때까지 이 마을은 이웃 도시 마야리의 일부였다. 이곳은 마야리 남서쪽 30㎞, 쿠에토 남쪽 9㎞에 있다. 올긴에서 비란까지 가는 길은 초원을 지나 멀리 높고 푸른 산맥을 바라보며 가는 이색적인 길이다. 길가의 살짝 기울어진 전봇대가 향수를 자아낸다. 반듯한 도로에는 인적마저 드물다.카스트로는 1926년 이 농장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미국과 스페인 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의 아버지 앙헬 카스트로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에서 쿠바로 이주한 사람이었다. 카스트로는 6살 때 비란을 떠나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갔다.

카스트로 형제의 출생지에 있는 박물관은 폐관시간을 꼭 확인하고 가야 한다. 평일과 토요일은 오후 3시30분, 일요일은 낮 12시에 문을 닫는다. 마을의 조그만 공터는 어린 남학생들의 축구장이다. 젊은 여인은 앞뒤로 아이를 태우고 말을 몬다. 어린 아들은 말 위에 깊은 잠을 잔다. 마을의 뒤쪽은 높은 산이고 앞쪽은 평원이다. 쿠바의 60년을 지배한 권력자를 낳은 풍수는 어딘지 모르게 피리 부는 목동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한적한 분위기다. 늘 여름 같은 날씨의 쿠바에서 혹여 눈이 내린다면 비란의 산자락이 아닐까 싶게 산세가 깊고 빼어나다.

글=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
올긴주의 랜드마크인 라 로마 데 라 크루스 언덕 위 십자가를 지고 있는 청동상
▶여행정보

올긴은 1545년에 세워진 도시다. 명칭은 창설자인 스페인 군인인 가르시아 데 올긴에서 따왔다. 항구도시 히바라에서 남서쪽으로 30㎞ 떨어진 고원지대에 있다. 1720년에 정착이 시작된 이래 민족주의 반란운동 중심지가 됐고, 십년전쟁(1868~1878)과 독립전쟁(1895~1898)을 주도한 곳이다. 중앙고속도로와 철도선이 지나므로 교통과 통신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