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정건전화로 위기대응 방파제 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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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중국 추격에 경제 '흔들'
퍼주기 복지, 기업때리기 멈추고
기업투자 활성화할 정책 펼쳐야
오정근 <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
1990년대 이후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한국 등 신흥시장국은 금융위기를 겪었다. 1997년 동아시아금융위기는 1994년 1월~1995년 4월 미국 금리인상 후, 2008년 신흥시장국 외화유동성 위기는 2004년 6월~2006년 8월 미국 금리인상 후 각각 그 이전 저금리 시절에 신흥시장국으로 몰렸던 자본이 유출되면서 발생했다. 이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低)금리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시장국으로 밀려들어 온 외국자본도 빠져나가는 등 위기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는 금리만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2008년 이후 3조달러 넘게 풀린 막대한 달러까지 환수하고 있어 파장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격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공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6일 각각 340억달러 규모의 상대국 수입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추가 부과하기 시작하며 전면전에 돌입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과 미국은 한국의 1, 2위 수출시장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되면 올해 한국의 수출액이 최대 약 41조원 감소하고 성장률도 2.5%까지 하락할 것으로 분석되는 등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은 이미 중국의 ‘제조 2025’ 정책 등 거센 추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은 중국의 물량공세에 고기술 일부 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고, 휴대폰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중국은 물론 인도 등 신흥시장국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자동차산업도 한국GM 군산공장이 수출부진으로 폐쇄되는 등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기술력이 다소 앞서 있다는 디스플레이도 고전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한국 수출을 지탱해 주고 있는 반도체마저 3000억위안(약 51조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는 등 반도체굴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공세에 위협받고 있다.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바이오산업은 물론 드론, 핀테크 등 정보기술(IT)산업에서도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중국발(發) 제조업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대책은커녕 ‘기업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설익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따른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親)노동정책에다 순환출자 해소, 내부거래 제재 강화, 기업지배구조 개혁, 금융그룹 통합 감독 모범규준 시행, 상법 개정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러니 투자가 이뤄질 리 없다. 밖에서 위기가 와도 안에서 투자가 활성화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주가도 상승하면 외국자본이 덜 빠져나가겠지만 이처럼 기업 때리기에만 열을 올려 투자가 안 되고 주가가 하락하면 위기가 더 빨리 덮칠 수밖에 없다.위기 시에는 구제금융, 실업급여, 일자리정책 등을 위한 건실한 재정이 버팀목이 된다. 위기를 한 번 겪으면 재정지출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두 배 정도 악화된다. 따라서 지금처럼 위기의 쓰나미가 몰려 올 때는 재정을 아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막무가내다. 내년에는 공공일자리, 복지지출 확대로 470조원의 슈퍼 팽창예산을 짠다고 한다. 고용보험기금 등 각종 기금도 모조리 뒤져 앞당겨 쓰고 있는 판이다.
이런 가운데 위기가 닥치면 금융위기에 이어 재정위기에까지 휘말릴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방파제’가 모조리 사라진 상황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투자활성화, 재정건전화란 위기 대비 방파제를 쌓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