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오지호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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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호남 화단의 거목 오지호 화백(1905~1982)은 구한말 전남 화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에서 프랑스 정통 인상파의 기법을 익힌 뒤 1931년 귀국해 ‘한국적 인상파’의 출발을 선언했다.
탁월한 미술이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1930년대 국내 화단에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미학을 처음 소개해 주목받았다. 1948년 이후에는 광주에 정착해 무등산 자락의 약 40㎡ 규모 초가에 줄곧 기거하며 호남의 정감 어린 시골 풍경과 산야, 바다의 풍광을 열정적으로 캔버스에 담았다. 1959년에는 비구상회화를 인정하지 않는 ‘구상회화선언’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 화백의 ‘베니스’는 서양의 추상화 장르가 화단을 지배하던 1974년 아내와 함께 9개월간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항구를 소재로 그린 대표적인 구상 작품이다. 서정적인 남도 풍광을 자양분으로 삼아 베니스의 하늘과 바다를 특유의 인상주의 화법으로 표현했다.
멀리 안개가 희미하게 깔린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아침 작업을 막 시작하려는 듯 움직임이 분주하다. 주로 푸른색과 흰색으로 대상을 잡아내 빛과 색채의 조화를 멋지게 연출했다. 거친 터치, 탁월한 데생력, 잘 짜여진 구도, 거기에 활달한 붓놀림까지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