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현장 외면하는 고용부의 원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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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고용노동부가 정유·화학업계의 정기보수나 신제품 출시를 위한 집중근로 등은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이 아니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특별연장근로 승인을 받으려면 재난·재해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이어야 하는데, 정기보수 등은 단지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것뿐이라는 게 고용부가 제시한 이유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인력 운용이 어렵다는 산업현장의 호소는 결국 퇴짜를 맞았다.
고용부가 특별연장근로 승인 요청을 거절하며 근거로 내세운 법은 근로기준법 53조 4항의 ‘특별한 사정’과 그 특별한 사정을 규정해 놓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자연재해나 사회재난, 그에 준하는 긴급성과 불가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다.정부의 적용 원칙은 법적으로 맞다. 하지만 고용부가 산업현장을 대하는 자세는 별개 문제다. 고용부는 특별연장근로 요청은 불가하다면서 추가적인 인력 채용이나 탄력근로제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기보수를 위해 사람을 더 뽑거나 최장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고용부는 기업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몰라서 특별연장근로 범위 확대를 요청했다고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3~4개월 임시업무를 위해 인력을 추가 채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고용부도 알고 있다. 그래도 법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고용부 지침대로라면 기업들은 탄력근로를 최대한 활용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집중근로가 필요한 기간에 한해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계절적 사유나 주문량 폭주 등의 경우라면 비정규직을 쓸 수 있다. 고용부의 원칙처럼 이 역시 법적으로 가능하다. 결국 산업 현실을 무시한 지침은 비정규직만 늘리고 기업 경쟁력을 흔드는 결과를 낳게 할 가능성이 높다.
탄력근로제 확대 등 이런저런 이유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근로시간 단축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게 고용부의 우려다.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지고지순의 가치는 아니다. 고용부에 보다 적극적인 법 해석과 유연한 정책 집행을 바라는 것은 무리한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