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원함을 선물하다

김태호 < 서울교통공사 사장 taehokim@seoulmetro.co.kr >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쉽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큰 더위가 있었다던 1824년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서 여덟 가지 피서법을 소개했다. 소나무 단에서 활 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빈 정자에서 투호놀이, 대나무 자리 깔고 바둑 두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물에 발 담그기.

200년가량이 지난 지금 현대인의 피서법은 어떨까. 최근에는 머문다는 뜻의 ‘스테이(stay)’와 휴가의 의미인 ‘베케이션(vacation)’을 합성한 ‘스테이케이션’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북적이는 휴양지를 피해 집이나 집 근처에서 실속 있게 피서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놓고 평소 미뤄둔 책을 읽는 것을 최고의 피서로 여겨왔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호사가 허락되지 않는 날들도 있다.지난해 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대규모 정전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전북 전주시, 경기 고양시, 충북 청주시, 부산광역시 등 각지에서 잇따라 정전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은 냉방 기구도 가동하지 못한 채 수시간을 찜통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정전의 원인은 연일 이어진 무더위로 전기 사용량이 순간적으로 폭증한 데 있었다.

5호선 열차의 종착지인 고덕차량기지에 가면 대규모 연료전지 발전시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설치된 19.6㎿급 연료전지 발전소는 연간 1억6000만㎾h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해 인근지역 4만5000가구에 공급하고 있다. 지하철 차량기지에 웬 발전시설이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 시설은 고덕차량기지를 포함한 6개 차량기지와 6개 지상역에 설치돼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곳곳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수익을 내거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처음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을 때는 생산한 전기 전량을 한국전력에 판매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3호선 옥수역과 7호선 도봉산역 태양광 시설에서 생산된 전기 일부는 여름철 승강장에 냉방기를 가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등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오늘 밤도 무척 덥다고 한다. 우리가 만든 에너지가 가족들과 에어컨 바람 맞으며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나눠 먹는 작은 행복을 누리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