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고점 논란' 재부상… 반도체 호황 정말 꺾였나

하향세 접어들었다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는 D램 현물가 올들어 하락세
하반기 공급 과잉도 문제

올해까지 호황 지속
삼성전자·SK하이닉스
3분기 물량까지 계약 마무리
거래의 90% 차지하는 D램 고정가도 견조

전문가 "돌발악재 없는 한 삼성·SK 호실적 지속"
지난 2년간 ‘슈퍼 호황’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누린 반도체 업황에 부정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3일 한 증권사가 “올 4분기부터 반도체 시장이 하향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2.0%, 7.05% 하락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올 1월부터 하락세를 타고 있는 D램 현물가를 호황이 끝나는 신호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과장됐다는 의견이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3분기(7~9월) 물량까지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계약을 마치고 4분기 물량을 수주하고 있다. 두 회사 메모리 반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D램의 고정거래 가격도 꺾이지 않았다.

현물가가 뭐길래반도체 업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첫 번째 이유로 올해 초 9.4달러에서 최근 8달러 밑으로 떨어진 D램 현물가(DDR4 8Gb 기준)를 꼽는다. 하지만 이는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결정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분석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D램익스체인지 등 시장조사업체들은 통상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고정거래가와 현물가로 나눠 발표하고 있다. 고정거래가는 반도체를 대규모로 구입하는 전자업체들이 반도체 제조업체와 계약하는 가격을 말한다. 현물가는 소비자가 시장에서 반도체를 직접 구입할 때의 값이다.애플이 삼성전자와 D램 공급 계약을 맺을 때는 고정거래가가 적용된다. PC 사양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사람이 온라인으로 반도체를 살 때 치르는 가격은 현물가다. 부품에 속하는 반도체의 특성상 고정거래가로 팔리는 제품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한 달에 한 번 집계되는 고정거래가와 달리 현물가는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현물가가 고정거래가 산정의 근거가 되면서 전체 D램 가격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D램 현물가 하락세는 시장의 추세 전환을 의미하기보다는 계절적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D램 현물가는 통상 비수기인 상반기에는 떨어지고 성수기인 하반기에 오른다”며 “올 상반기 현물가 약세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도 2월부터 4개월간 현물가가 떨어졌지만 고정거래가격은 강세였다.
호황 언제까지 가나일각에서는 공급과잉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오는 9월부터 평택공장에서, SK하이닉스는 증설된 중국 우시공장에서 연말부터 D램을 추가 생산한다. 메리츠증권은 이 같은 생산계획을 근거로 4분기부터 D램 가격이 떨어지면서 반도체업체들의 수익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생산량 증가만큼 수요가 늘지 않아야 설득력을 지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지난 5월 세계 D램 매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57.3% 늘었다. 매출 증가율이 89.4%에 이르렀던 지난해 9월에 비하면 떨어졌지만 여전히 매달 전년 동월에 비해 5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스마트폰의 대당 메모리 반도체 탑재량도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이라는 설명이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서버 및 모바일용 제품 중심으로 생산라인을 돌리면서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던 PC용 반도체도 최근 품귀현상을 빚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계획대로 공장 가동에 들어가더라도 올해 D램 생산량 증가는 20%가량에 그칠 것”이라며 “공급 과잉을 불러올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3배 이상 뛰어오른 D램 고정가격이 꺾이는 시점을 내년 이후로 예상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는 하반기에도 수급 여건이 빠듯해 D램값이 2% 안팎 추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세계경제에 돌발 악재가 나타난다면 반도체 호황이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소비가 급격히 위축돼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판매량이 급감하거나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부족해져 서버 투자가 크게 줄어드는 경우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