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예비율 7%대로 '뚝'… 정부 "문제 없다" vs 전문가 "비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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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 '전력 비상' 아니라는 정부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력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청와대, 정부, 여당이 24일 일제히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청와대는 ‘탈(脫)원전 정책을 표방하던 정부가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다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서두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각을 세웠다.
(1) 폭염 때문에 원전 가동 조정 안했다?
한수원 "가동일정 조정해 전력수요 대비" 발표
(2) 전력 수급 문제 없다?
전문가 "예비율 10% 밑돌면 위험하다" 경고
(3) 이상기온 때문 수요 예측 틀렸다?
脫원전 위해 전력수요 낮게 잡았다가 날씨 탓
하지만 연일 전력 사용량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전력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전날 저녁 기업들에 “수요감축 요청(DR) 준비를 해달라”고 통보하고서도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도 정부정책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전력수급은 정부가 공언한 대로 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주장에 대해 사실 관계를 들여다봤다.(1) 원전 스케줄 조정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원전 가동사항에 대해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주장이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온 정부가 이상기온 때문에 원전을 재가동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란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하지만 원전 가동 일정을 조정해 최대 전력수요에 대비하겠다고 발표한 건 정부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이다. 한수원은 지난 22일 ‘여름철 전력공급을 위한 총력대응’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현재 정지 중인 한빛 3호기, 한울 2호기 등 두 기의 원전을 전력피크 기간(8월 2~3주차) 이전에 재가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한빛 1호기 및 한울 1호기의 계획예방정비 착수시기를 피크기간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원전 스케줄 조정에 따라 500만㎾의 추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게 한수원 측 얘기다.
국내 원전 가동률은 2016년까지만 해도 평균 80~90%를 유지했다. 새 정부가 탈원전을 국정기조로 채택한 뒤 작년 평균 71.3%로 하락한 데 이어 올 3월 54.8%로 역대 최저점을 찍었다. 국내 24기 원전 중 10기 안팎을 ‘안전점검’ 명목으로 세워둔 탓이다. 한수원이 원전 가동 일정을 재조정하면서 평균 가동률은 다음달 80% 수준에 육박할 전망이다.
(2) 지금은 전력비상 아니다?산업통상자원부는 수차례에 걸쳐 “비상 자원을 잘 갖추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전력공급 예비율이 7.7%로 떨어진 이날도 “아직 여유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예비력이 역대 최고인 1000만㎾가 준비돼 있어 수급엔 문제가 없다”고 거들었다.
이는 전력 예비율이 한때 8%대까지 떨어지면서 ‘비상령’이 발동됐던 2016년 여름과는 정반대 반응이다. 당시 산업부는 “폭염 때문에 예비율이 두 달 사이 네 번이나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며 총력 대응에 나섰다. ‘문 열고 냉방영업하는 행위’를 적극 단속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각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예비율이 10%를 밑돌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게 당시 정부 및 전문가들의 입장이었다.현재 예비력이 역대 최고란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2015년 여름 피크시기의 예비력은 1267만㎾였다. 요즘 예비력은 피크시간 기준으로 800만㎾를 밑돌고 있다.
(3) 예측 틀린 건 이상기온 때문?
정부의 수요예측이 계속 틀리고 있다. 지난 5일 공개한 ‘하계 수급대책’에서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8830만㎾, 예비력을 1241만㎾(예비율 14.1%)로 봤지만 벌써 수일째 이 기록이 깨지고 있다. 산업부는 “평년과 달리 유독 더운 올해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장기 수요예측 계산식엔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전력거래소는 전력 수요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최저·최고 기온을 전망할 때 과거 30년의 기온을 평균 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 고온이나 한파는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예컨대 서울지역 기온이 최고 35도 이상, 최저 -15도 이하로 떨어진 날은 지난 10년간 각각 6회 및 7회나 됐다. 전력 사용량이 순간적으로 급증할 수 있는 이상기온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전력수급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한 배경이다.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이상기온 때 전력 사용량이 한순간 급증하면 대정전(블랙아웃)이 올지 모른다”며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전력수급이 차질을 빚지 않는다는 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최대 수요를 낮춰잡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