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주거복지 새 틀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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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안정과 과거 경험에 갇힌 주택정책작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주택사업 관련 종사자와 주택 전문가들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쓴 《부동산은 끝났다》를 집어들었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주택정책을 총괄한 당사자로서 경험한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주택정책의 배경과 목적, 그리고 추진 과정에서 고민했던 사항을 담고 있으며, 정책 실패 원인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싣고 있다. 현 정부도 노무현 정부와 같은 틀을 가지고, 주택시장 안정에 방점을 둔 규제 중심 주택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주택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
주거 선호·주택시장 급변 추세에 발맞춰
열린 시각으로 新주거복지 비전 내놔야
권주안 < 주택산업연구원장 >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에 시작된 전세가격 상승은 반(半)전세를 확산시켰고, 서점가에는 임대사업 지침서, 족집게 주택투자서 등 자본이득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주택으로 돈을 더 벌 수 있는지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제목대로, 과거의 주택시장은 이미 없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대사,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는 표현이 좀 과하지만 현 시장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미지의 주택시장 그 중심엔 주거 선호와 패턴의 변화가 있다. 전세 중심의 임차시장 강세, 수도권 거주 집중, 지역 간 가격 및 분양시장 양극화는 고령화와 함께 주택시장 지형도를 계속 바꾸고 있다. 주택 대량 공급으로 만들어진 학교 교실이 이젠 남아돌고, 몇 년 후면 대학 정원에 비해 고등학교 졸업생이 적을 것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주거패턴 변화’의 징후가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가격 안정 말고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주택 문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과의 전쟁, 반복되는 시장주의-반시장주의 정책 기조로는 앞으로의 시장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과 주거 지원은 지속해야 하지만, 소외계층이 아닌 사람들의 주거복지도 중요하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소유보다는 공간의 소비, 공유 선호의 증대, 그리고 도심 집중 등 주거 및 선호 변화는 과거 대량생산과는 다른 양상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 양극화는 인구 집중의 결과이고 가격 격차로 이어진다. 도시재생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절대적 주거공간이 늘어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일부 도심과 도심 인접 지역의 주거공간 개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환경과 개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공공선택도 중요하지만, 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과 비용 절감 효과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정부의 지혜와 열린 사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청약제도를 통한 분배형 주택 공급도 바꿔야 한다. 선분양이니 후분양이니 하는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공급자가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공동주택이든 아니든, 분양이든 임대든, 주거공간 생산에 작용하는 규제들의 적정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공급 과정에서 개별 가구에 맞게 자금조달 서비스 등이 합쳐지는 토털형 공급 방식이 가능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공급 주체의 정체성보다 수요 맞춤 능력이 더 부각돼야 한다. 법이나 규제보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공급에 먼저 담겨야 한다. 무차별적 분배가 아니라 차별적 맞춤형 공급이어야 한다.또 주택 관련 개별 사업법이 가졌던 진입 장벽이나 독점적 지위는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주택사업이 서비스업인지 아니면 제조업인지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 위에 주거 서비스의 산업화 로드맵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주택정책은 ‘공급정책’이 아니라 융복합을 염두에 둔 ‘산업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서비스와 주거공간이 잘 융합돼야 수요도 복지도 충족될 수 있다.
주거 선호와 주택시장은 변하고 있다. 정부는 ‘가격 트라우마’와 ‘과거 경험’에만 갇혀 있어선 안 된다. ‘신(新)주거’를 준비해야 한다. 가격 안정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젠 열린 시각으로 주거복지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