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무궁화호 열차 탑승기

김성녀 <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중앙대 교수 sung-nyo@hanmail.net >
급하게 시골집에 다녀올 일이 생겨 기차 예매를 하려고 하니 시간대가 맞는 기차는 오후 1시에 떠나는 무궁화호 열차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서둘러 겨우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기차를 타자마자 기운이 쏙 빠졌다. 오전에 처리할 일들이 있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편한 복장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커다란 안경으로 화장 안 한 얼굴을 가린 채 기차를 탄 내 모습은 영락없이 배고프고 지친 난민 행색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특실이라 그런지 객실은 휑 비어 있었다. 드문드문 자리에 앉은 승객들은 김밥이나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 지갑을 찾는 중에 7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분이 창가 쪽 내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 하필 왜 내 옆자리야.” 속으로 구시렁대며 자리 통로를 내주고 다시 지갑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바쁜 중에 휴대폰만 챙기고 다른 가방을 들고 나온 것이다.얼굴이 노래지고 배는 더욱더 고파져 큰일 났다 싶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곤소곤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기차역으로 나와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옆에 앉은 분이 큰 소리로 “여기 있어요” 하며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4호실에 가면 먹을 것을 살 수 있다고, 굶으면 서럽다고 위로까지 하면서 막무가내로 내 손에 쥐여 준다. 창피하기도 하고 물러설 것도 같지 않아 만원을 들고 4호실로 갔다.

4호실엔 아무것도 없었고 달랑 있는 음료 자판기는 그나마 고장이었다. 어린 시절 무궁화호 열차의 정겨운 풍경이 아른거렸다. 창문 너머로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파는 아줌마들, 좁은 통로에서 오징어 땅콩을 외치며 귤 봉지를 들고 다니다 급히 하차하던 아저씨들까지….

빈손으로 돌아온 나를 보더니 그분이 승무원을 불러서 왜 먹을 것을 안 파느냐, 자판기가 고장 났으면 고쳐놔야지 물도 없으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승무원이 물이라도 구해 오겠다고 해서 만원을 내밀었더니 천원짜리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그분이 지갑에서 또 천원짜리를 꺼내줬다. 그러고는 다음 역에 내리면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하며 돈을 돌려받지 않았다.두 시간 반의 기차여행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난생처음 겪은 일이 어이가 없어 실실 웃음도 나오고, 적선 받은 만원과 천원이 더위가 몰고 온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가슴 아프고 황당한 일들을 매일 접하는 이 불타는 여름에 서민의 발인 무궁화호에서 만난 그분은 나에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 시원한 물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