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잔치가 끝나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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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전 세계 고용노동관계 학자들 잔치가 서울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27일까지 5일간 진행되는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2018 서울 세계대회’다. ILERA 창립 52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 열린 행사에 62개국에서 200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고용’을 주제로 157개 세션을 통해 630건의 다양한 주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재정적으로 힘을 보탰다. 노동 분야 세계 최대 학술대회라는 평에 걸맞은 규모다.
서울로 쏠린 국제노동학계 이목ILERA 회장인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4일 개막식에서 ‘노사의 생산적 상호작용’을 역설했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양극화, 공유경제 확산 등 산업화 시대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는 요즈음 전통적 노조 구조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사·정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기대를 드러냈다.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은 “플랫폼 노동, 고령화 등이 빠르게 진전되는 과정에서 고용환경을 차질 없이 조성하자”고 강조했다.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포용적 노동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시기에 열리는 만큼 많은 제안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노동을 비용이 아니라 혁신 동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협력적·미래지향적 노사관계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10(유노조) 대 90(무노조)의 구조를 개선하고 노동환경 변화에 대응 가능한 고용노사관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김태기 단국대 교수) “고용노동학계가 지나치게 노동 친화적이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 “일의 미래, 일자리의 미래를 논의하려면 노사가 대립적·투쟁적인 관계가 아니라 리스크를 공유하고 협업이 필요한데 그런 논의가 부족하다.”(경제단체 임원)
울림과 감동 이어가는 뒤풀이잔치가 끝나면 공허감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규모가 클수록 공허감은 커진다. 공허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니 한 잔치만 못하다. 준비하고 벌이는 것보다 뒤풀이가 중요한 이유다. 잔치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감동과 울림이 얼마나 깊고 길게 이어지느냐로 모아진다. 글로벌 무대에 코리아를 등장시키고 널리 알린 ‘88 서울올림픽’이 대표 사례다. 잔치로 흥을 북돋고, 그 흥을 바탕 삼아 국민 모두가 합심해 선진국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ILERA 서울 세계대회’가 서울올림픽만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는 노동 분야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잔치 손님들의 덕담을 모아 새 지향점을 만드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중도 보수로 분류되는 고용노동관계 학자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서 제외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학계나 학자들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학문적 논리가 정책의 준거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자 및 일과 일자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래서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도 중요하다. 바야흐로 잔치가 끝나고 난 뒤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노사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쏠림을 내포하고 있는 ‘노동존중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