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軍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이미아 정치부 기자 mia@hankyung.com
“더 이상 군이 이념과 정치에 휩쓸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혁신하겠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 19일 계룡대에서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한 말이다. 하지만 송 장관이 약속한 군의 탈(脫)정치화 선언은 닷새 만에 허언이 됐다.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계엄 문건’의 보고 여부를 둘러싸고 송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 사령관은 국회에서 말 그대로 ‘혈전’을 벌였다. “계엄 문건을 위중한 상황으로 보고했다”는 기무사 대령의 폭로성 발언에 송 장관은 “장관이 거짓말하겠냐”며 받아쳤다. 이 모습은 여과 없이 TV로 생중계됐다. ‘정치 군인’들의 생존 게임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26일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군인들이 청와대만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장성들의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도 잊을 만하면 터진다. 지난 24일엔 육군 소장이 성추행으로 보직해임됐다. 군 내 성추문 적발은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상명하복의 군 체계를 감안하면 ‘적발되지 못한 성추행’이 훨씬 많다는 게 군 관계자들 전언이다. 군의 기강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잇단 군기(軍紀) 사고는 군 전력의 기본이 되는 사기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지난 17일 군인 5명이 순직한 포항 해병대 마린온 헬기 추락사고는 국방부가 군의 사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방부는 사고가 난 지 사흘이 지나서야 ‘희생자 가족께 드리는 국방부 장관의 글’을 발표했다.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은 영결식에 지각했다가 유족 항의로 입장을 거부당했다. 정치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행사는 관심 밖이라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4·27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슴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평화 열차’가 탈선하지 않으려면 군의 철저한 안보태세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군 개혁 못지않게 군의 탈정치와 안정화도 시급한 과제다. 허언이 돼 버린 송 장관의 탈정치 선언이 이제라도 실현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