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무서운 전기료 '징벌적 누진제'… 최고 7배 더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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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전기료 폭탄' 고지서한국전력의 ‘전기요금 고지서 폭탄’은 다음달 11일께부터 각 가정에 날아들 전망이다. 이달 말 검침을 받는 가정에선 이번 폭염이 시작된 지난 11일부터 월말까지의 전기 사용량이 고지서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만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어 여름이나 겨울철 냉·난방 수요가 늘면 요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뛰는 구조다. 열대야 등으로 최근 하루 10시간 이상 에어컨을 켰다면 월 수십만원의 전기료를 납부해야 한다.
하루 10시간 에어컨 켜면 '슈퍼 요금제' 적용 대상
하루 8시간 쓸 때보다 부가세도 1만5천원 더 붙어
누진제 개정 靑 청원 '봇물'
고지서가 두려운 소비자들이달 스탠드형 에어컨(소비전력 1.84㎾h)과 벽걸이형 에어컨(0.72㎾h)을 하루 10시간씩 사용했다면 다음달 납부해야 할 전기요금은 37만9020원이다. 8시간 사용할 때와 비교하면 12만140원을 더 내야 한다. 전기 사용량이 불과 16% 늘지만 요금은 46%나 뛰는 것이다. 일반 주택에 거주하는 4인 가구 기준이다.
주택용 저압 전기를 사용하는 아파트에서 스탠드형 에어컨을 한 대만 사용하되 하루 12시간씩 가동했다면 한 달 전기료는 29만1090원으로 계산된다. 이상 기온이 없던 작년 같은 기간에 하루 8시간만 에어컨을 켰을 때의 전기료(20만5400원)보다 8만5690원 더 내야 한다.
이마저 2016년 주택용 누진제를 개편해 전기요금을 종전 대비 평균 11%가량 낮춘 것이다. 정부는 당시 6단계였던 주택용 누진체계를 3단계로 완화했고 누진율을 최고 11.7배에서 3배로 좁혔다. 다만 1000㎾h를 초과해 사용할 경우 종전의 최고요율(㎾h당 709.5원)을 그대로 뒀다.폭염에다 가정수요 급증
다음달 가정용 전기료 급증이 예상되는 건 기록적인 폭염에 따라 에어컨을 켠 가정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돼서다. 지난 25일까지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은 폭염일은 총 10.3일을 기록했다. 역대 두 번째로 길었던 1978년의 10.5일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가정용 에어컨 보급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냉방 수요 급증의 주요 배경이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2015년 150만 대 수준이었던 가정용 에어컨 시장은 올해 270만 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전기레인지, 빨래건조기, 공기청정기 등 전기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 보급도 늘고 있다. 국내 전기레인지 시장은 2015년 1000억원 선이었지만 작년 1조5000억원대로 3년 만에 15배 늘었다.한국전력 관계자는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에어컨과 전기 탈수기 등의 보급이 늘면서 가정용 전기수요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진제 재검토하라” 목소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폭염이 시작된 이달 들어 관련 청원이 급증해 26일 현재 170건을 넘어섰다. A씨는 “폭염 속에서 사망 사고까지 발생해도 요금이 두려워 에어컨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주부라고 소개한 B씨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에어컨이 필수가 됐는데 마음껏 쓸 수 있게만 해줘도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정부는 전기요금 누진제를 2016년 손본 만큼 지금 단계에서 재검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 전력수급 대책에 관한 긴급 브리핑을 연 자리에서 “가정용 누진제 영향을 분석하고 한전 경영상태까지 살펴본 뒤 고민하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은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다만 중·장기적으로 구간별 차등폭을 줄이고 밤시간대에는 요금을 깎아주는 등 가정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재길/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