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불량·과적 화물차는 '도로 위 괴물'… 잇단 참사 '원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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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리포트지난 23일 경기 평택 인근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던 이모씨(47)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갑자기 날아든 대형 타이어와 정면충돌했다. 지름 1m, 중량 80㎏에 달하는 타이어가 앞유리창을 박살 내고 운전석과 조수석을 그대로 덮쳤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이씨 아내가 현장에서 숨지고 이씨와 10대 두 딸은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타이어는 반대편 도로를 주행하던 25t 화물차에서 빠진 것으로, 사고 사흘 전 펑크가 나 정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측 못해 운전자들 '불안'
갑자기 날아든 타이어·판스프링…
차량 결함 인한 사고 잦아
정기검사 '꼼수 통과' 빈번
1998년 차령제한제 폐지로
노후 화물차 비율 42% 달해
정비·과적 단속 강화 시급
日서는 3개월마다 분해 점검
주행·제동장치 점검 부활해야
잇단 화물차 참사에 커지는 시민 불안정비가 불량하거나 노후화된 대형 화물차에서 이탈한 차량 부품 등이 주변 차량을 덮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화물차의 원인별 사고 현황’에 따르면 타이어 파손, 부품 이탈 등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551건, 사망자는 19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타이어 파손이 195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품 이탈(37건), 제동장치 이상(68건) 등으로 집계됐다.
지난 13일 경부고속도로 대구 달성군 하빈면에서 부산 쪽으로 달리던 4.5t 화물차가 앞서 달리던 화물차에서 떨어진 예비 타이어와 부딪혀 화물차 운전자가 사망했다. 지난 1월25일 중부고속도로 경기 이천시 호법면 부근 도로 위에 방치돼 있던 철판이 관광버스 바퀴에 튕겨 나가 주변에서 승용차를 운행하던 차모씨(37)가 목 부위를 맞고 숨졌다. 현장에서 회수한 철판은 화물트럭 하부에 장착돼 진동을 흡수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을 하는 판스프링으로 확인됐다.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화물차는 출고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기적으로 안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교통안전공단은 출고된 지 2년을 넘긴 사업용 대형 화물차에 대해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정기검사는 외관을 살피는 육안 검사와 제동력 시험기 등을 활용한 안전도 검사 등으로 이뤄진다. 인근 검사소나 민간정비업소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일정 기간 내 정기검사를 받지 않으면 최대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허울뿐인 정기검사…노후차 비율 42%
일각에서는 현행 정기검사만으론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까지는 1년에 한 번씩 차량 바퀴 등 화물차의 핵심 부위를 분해해 내부 주행·제동장치 상태까지 살펴보는 ‘정기점검’이 시행됐다. 주로 육안으로 확인하는 정기검사에 비해 정확하게 차량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검사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어 화물차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2013년 폐지됐다.
일부 화물차 기사는 정기검사조차 피해가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검사소에서 만난 한 화물차 기사는 “정기검사에서 통과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기사들은 평소 알고 있던 정비업소에 부탁해 대충 통과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 지난 5월 과적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불법구조변경 화물차 1200여 대를 정기검사 등에서 몰래 통과시켜 준 자동차종합검사소가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소문을 듣고 화물차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후문이다.
노후 화물차가 많다는 점도 사고가 잦은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생계형 기사들이 많다 보니 차량을 쉽게 바꿀 수 없어서다. 지난 23일 타이어 충돌 사고를 빚은 화물차도 출고된 지 17년 된 노후차량으로 알려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차량 2252만여 대 가운데 10년 이상 된 차량은 32%(723만여 대)에 불과하지만 화물차는 354만여 대 중 42%(152만여 대)에 달했다. 영업용 승용차·승합차와 달리 화물차는 사업용 자동차의 차령(연식)을 규제하는 ‘차령제한제’가 1998년 폐지돼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일본에서는 3개월마다 분해 점검”
화물차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과적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더라도 과적 상태로 운행을 계속하면 차량 자체가 쉽게 망가질 수밖에 없어서다. 10년째 화물차를 운전 중인 송모씨(47)는 “가능한 물량의 두 배 이상까지 싣는 경우도 많아 차에 무리가 많이 간다”며 “새 화물차를 구입한 지 1년 만에 타이어만 두 번 교체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과적 등 화물 적재 불량으로 지난 3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낙하물 사고만 137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매년 화물차 안전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차량 정비 규제와 과적 단속 강화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조헌종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는 “일본에서는 사업용 화물차에 대해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분해 점검을 한다”며 “화물차 사고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화물차 정비와 단속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도 “2013년 폐지한 정기점검을 부활시키고 경찰·도로공사 등 관계기관이 상시적으로 과적 단속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