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따로가는 韓·美 대통령 지지율과 경제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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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문재인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2배나 높다. 한때는 3배에 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난 2분기 성장률은 미국이 4.1%(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로 한국의 2.9%보다 약 1.5배나 높다. 1980년 2차 오일 쇼크,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한국과 미국 간 성장률이 역전된 것은 이례적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기순환 상으로 한국 경제는 ‘더블 딥’을 뛰어넘어 ‘트리플 딥’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점이다. 3분기 성장률을 지켜봐야겠지만 더블 딥은 침체 국면, 트리플 딥은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대로 가다간 한·미 간 성장률 역전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중진국 함정이란 2006년 세계은행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특정국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서 밀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징후가 눈에 띈다. 한국 경제의 대외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15년 세계 11위까지 올랐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작년에 한 단계 밀렸다. 같은 기간 외환보유액은 7위에서 9위로, 주식시장 시가총액도 12위에서 13위로 떨어졌다.
현 정부 성장정책의 골격인 ‘소득주도(혹은 포용적) 성장’을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상대소득가설(F. 모딜리아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높아 세율 인상 등을 통해 고소득층의 소득을 저소득층에 이전하면 소비가 증가해 성장이 높아질 수 있다. 경기부양 효과가 작은 일반 경직성 항목을 큰 투자성 항목으로 이전시켜 성장을 끌어올리는 ‘페이 고(pay go)’와 동일한 원리로 총수요 진작책의 일환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세계적인 성장정책 추세와 거리가 있다.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성장하는 국가일수록 총수요 진작책보다 총공급 중시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또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인 기업에는 규모에 관계없이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2분기 기준으로 잠재 수준 대비 실제 성장률이 가장 높게 나온 미국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성장 국면을 유지하고 있다. 핵심 성장동력은 기업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한 ‘리쇼어링’ 정책을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더 강화해 추진하고 있다. 리쇼어링의 핵심 수단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다. 특히 법인세를 35%에서 21%로 기업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대폭 내렸다. 이마저도 올해 안에 20%로 추가 인하하기로 했다. 미래 국부를 책임질 4차 산업 관련 기업에는 정부가 간섭을 안 하는 ‘규제 프리존’을 설정해 전폭 지원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불만사항을 즉시 수용해 해소해주는 옴부즈맨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성장 촉진 요인이다. 중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의 인위적인 수출 억제와 수입 중단 조치에 대해서는 통화, 관세, 심지어는 첨단기술 전쟁까지 불사한다.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국제기구를 탈퇴하고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는다.기존의 우호국(유럽, 캐나다, 한국 등)이냐, 비우호국(중국, 북한 등)이냐에 관계없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느냐만을 잣대로 삼아 무역적자와 같은 현안에 대해 교역 상대국과의 관계를 가져간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기업인의 애국심을 스스로 불러일으키게 하는 성장 동인이다.
기업이 잘되면 인위적인 분배정책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국민은 혜택을 본다. 미국 집권당의 경제 성과와 국민의 체감경기를 평가하는 경제고통지수(MI: misery index=실업률+소비자물가 상승률-경제성장률)는 지난 6월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가장 긴 성장 국면을 구가했던 1990년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세계적인 성장정책 추세와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 핵심 동인을 살펴보면 현 정부의 성장정책이 가야 할 방향이 잡힌다. 세계적인 추세를 선도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지만 ‘중간자’라는 독특한 위상에 있는 한국 경제는 최소한 따라는 가야 한다. 기업 중시, 세율 인하, 4차 산업 육성, 고용창출 등이 해당된다.
경제 각료는 유연하고 선제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내가 주장했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사전에 준비 없이 ‘일단 해보자’는 자세는 금물이다. 정책 수용층인 국민도 보수냐, 진보냐 가릴 것 없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 적극 협조하는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해야 장기 침체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