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일자리 창출 기대했지만… 대기업 절반 이상 "채용 확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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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도입 한 달국내 주요 대기업의 절반 이상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더라도 채용 규모를 늘릴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기업들이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 채용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20대 주요 대기업 설문
한국경제신문이 29일 20대 그룹(공정거래위원회 기준)의 18개 대표 계열사(근로시간 단축 시행 대상이 아닌 2개 그룹 제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개 기업만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하기 위해 추가 채용을 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10개 기업은 최장 근로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특히 5대 그룹 대표계열사 가운데 채용을 더 하겠다고 답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A기업 관계자는 “일감이 없어 오히려 인력을 줄여야 할 상황이라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하기 위한 추가 채용 여력이 없다”며 “단순히 제도가 바뀐다고 기업들이 사람을 더 뽑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안일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분류되는 기업 다수도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B그룹의 한 임원은 “사업이 잘된다고 채용 규모를 늘렸다가 추후 상황이 나빠졌을 땐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단순한 임금 외에 복리후생비 등 추가 비용도 만만치 않고, 해고도 쉽지 않기 때문에 채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일자리, 특히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는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기 위한 기업별 제도도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장거리 출장 때 직원 근로시간을 사전에 책정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데, 18개 기업 중 8곳이 아직 이를 완료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노사 합의를 못하면 직원이 해외 출장을 갈 경우 비행시간과 비행 대기시간, 현지 이동시간 등을 모두 근로시간으로 책정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제도 정비를 발빠르게 하는 대기업의 사정이 이 정도라면 중견·중소기업은 거의 손을 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는 기업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줬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도병욱/안재광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