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너의 이름은' 봤니?… 히다 후루카와驛 나오니… 어! 만화속 장면과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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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히다 후루카와는 400년 전 일본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성하마을이다. 일본식 전통 양초 전문점, 양조장, 종이 공예 공방, 미술관 등 전통과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가 가득하다. 마을은 ‘속세 생활에 지치면 후루카와로!’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고적한 마을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성지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너의 이름은’의 흔적을 따라 히다 후루카와 마을에 들어섰다.
색다르게 즐기는 일본여행 (11) 기후현 ② 히다 후루카와/다카야마
400년前 전통문화 그대로
히다 후루카와역 나서면 마을
좁은 수로따라 옛 정취 물씬
'작은 교토'로 불리는 다카야마
높은 산 많아 트레킹족 북적
후루이 마치나미 거리엔
주조장 등 전통상점 즐비
300엔 사케잔 사면 무제한 시음
글·사진=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애니메이션 여행의 시작, 히다 후루카와 역
히다 후루카와에서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소는 히다 후루카와 역이다.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주인공 타키의 아르바이트 가게 선배와 친구가 미쓰하를 찾으러 타고 왔던 열차가 들어오는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히다후루카와 역에는 철길을 건널 수 있는 육교, 히다후루카와 에키바시가 있다. 이곳에서 선로를 내려다보면 애니메이션의 장면과 똑같은 풍경이 보인다. 열차가 하루에 몇 대 들어오지 않는 역인데, 마침 열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열차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선로의 반대편에 있었지만 역의 풍경은 하늘의 구름마저 똑같아 이곳이 현실인지 만화 속인지 구분되지 않았다.‘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으로 감독은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기후현 히다 산악지대 이토모리 마을에 사는 소녀 미쓰하는 서로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다. 꿈은 현실처럼 생생하다. 두 사람은 낯선 가족, 낯선 친구들, 낯선 풍경을 만나면서 서로가 뒤바뀐 걸 깨닫는다. 타키와 미쓰하는 몸이 바뀐 상태에서 서로 소통하는데 몸이나 노트, 스마트폰에 메모를 남긴다. 그러면서 점점 서로를 알게 된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타키는 자신들이 특별한 운명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고 미쓰하를 만나러 간다. 3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절대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운명이 된다.‘혜성 충돌’이라는 소재로 운명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너의 이름은’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모티브가 됐다.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마을을 삼켜버린 것처럼 운석이 충돌해 사라진 마을에 미쓰하를 찾으러 떠나는 타키는 나고야, 다카야마, 히다 후루카와를 거친다. 미쓰하가 살았던 이토모리 마을은 실제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히다 후루카와를 이토모리 마을의 배경으로 삼았다. 히다 후루카와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너의 이름은>의 장면을 둘러보는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로 인기를 끈다.히다후루카와 에키바시를 내려와 역 안에 들어가면 일본 ‘3대 규(소고기)’로 손꼽히는 히다 규 마스코트가 서 있다. 타키와 함께 이곳까지 왔던 여자 선배가 이 모형을 보고 귀엽다고 펄쩍펄쩍 뛰던 곳이다. 역을 나오면 택시 정류장이 바로 나오는데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 그림을 보여주며 택시를 타던 곳이다. 애니메이션은 이런 장면까지도 마을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역을 나와 마을 속으로 걸었다. 마을에는 어떤 장면이 숨어 있을까.옛 모습 그대로 세토가와·시라카베도조마치
히다 후루카와 마을에는 강이 흐른다. 미야가와의 지류인 세토가와가 좁은 수로를 타고 마을을 가로지른다. 세토가와는 채소도 씻어 먹을 만큼 깨끗했지만 마을이 발전하면서 오염됐다. 세토가와를 살리자는 염원으로 강에 잉어를 키웠다. 수로를 내려다보면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잉어들이 떼지어 다닌다.수로가 흐르는 골목에 접어들면 하얀 벽의 건물인 시라카베도조마치가 이어져 있다. 돌다리가 놓인 수로와 어우러진 하얀 벽은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건물 맞은편에는 신사와 사찰이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골목은 좁지만 다양한 표정을 지녔다. 바삐 걷지 않아도 된다. 수로가 흐르듯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표정을 살핀다. 사진을 찍으면 그림처럼 나온다. 골목의 고즈넉한 풍경 속을 빠져나와 타키 일행이 라멘과 이 지역 명물인 고헤이 모찌를 먹었던 상점인 아지도코로 향했다. 점심때가 지난 터라 가게 안은 한산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보고 있으니 주인이 알아서 ‘너의 이름은’의 라멘을 짚어준다. ‘다카야마 라멘’이라고 하는데, 애니메이션 덕에 이 지역 명물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실내에도 애니메이션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다카야마 라멘은 일본에서 많이 먹었던 돼지고기 육수의 깊은 맛이 아니라 미소된장으로 국물을 내 맛이 깔끔하다.
고헤이 모찌는 가게를 나서 미야게라는 간판이 붙은 상점에서 판다. 상점 가판대에서 고헤이 모찌, 히다규 꼬치, 당고(팥소를 넣거나 붙여 만든 경단) 등을 팔고 있다. 고헤이 모찌는 밥을 떡처럼 뭉쳐서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 막대에 끼운 뒤 일본 된장 소스를 발라 구운 것이다. 약간 짭짤하지만 한 번쯤 사먹어도 좋을 간식이다.
히다 후루카와는 지자케(지역술)로도 유명한 곳이다. 마을을 걷다 보면 주조장을 많이 볼 수 있다. ‘너의 이름은’의 여주인공 미쓰하는 신사의 무녀인데, 제를 지내는 춤을 추며 술을 빚기 위해 쌀을 씹어 뱉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씹어서 뱉어낸 쌀을 발효시켜 만든 구지카미자케를 ‘최고의 술’로 여긴다. 주조장마다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하얀 술병에 담긴 쿠지카미자케를 팔고 있다. 무녀가 씹다 뱉은 쌀을 발효해 만든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히다 후쿠카와
히다 후루카와는 애니메이션의 흔적을 따라 온 사람이 많지만 이 외에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건축물도 독특하다. ‘히다의 장인’이라고 불리는 목수가 많아 지붕 처마 밑과 격자가 섬세하게 조각됐다. 마을 건축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걸어도 좋겠다. 마을은 화려한 마쓰리가 유명한데 4월20일 열리는 후루카와 마쓰리에서 수레에 새겨놓은 조각은 감탄할 만하다.
히다시의 시립도서관인 히다 후루카와 도서관은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을 찾기 위해 정보를 찾아보던 장소로 나온다. 도서관도 애니메이션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오니 도서관의 서가를 거닐어도 재미있지만 사진 촬영은 할 수 없다. 타키 일행이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어보던 게타와카이야 신사는 본당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고, 소소한 시골 마을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천천히 산책하는 게 좋다.
마을 기념품 숍에서는 여주인공 미쓰하의 머리끈, 타키의 팔찌 등 ‘너의 이름은’을 테마로 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실을 엮어 머리끈이나 팔찌 등을 만드는 일본 전통 끈을 구미히모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구미히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붉은 머리끈은 미쓰하와 타키가 시공간을 초월하며 만나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쓰하와 타키의 연결고리였던 머리끈과 팔찌는 인연, 운명을 상징한다. 사람의 인연을 실을 엮어 만든 끈으로 표현했다.
‘너의 이름은’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은 인연, 운명을 뜻하는 매듭, 무스비라 볼 수 있다. ‘실을 잇는 것이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다. 뒤틀리고 얽히고 때로는 돌아오고 또다시 이어지는 그게 바로 무스비, 그게 바로 시간’이라는 대사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시간을 거슬러도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시간, 히다 후루카와 작은 마을에 서 있는 것도 무스비, 운명인 것처럼.
소중한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어버리면 안 되는 사람, 히다 후루카와는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작은 교토, 다카야마
히다 후루카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카야마는 히다 후루카와보다 전통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곳이다. 히다 후루카와가 교토 외곽의 아기자기한 마을 같다면 다카야마는 교토의 중심지 같은 느낌이다. 히다 후루카와와 함께 ‘쌍둥이 작은 교토’로 불리는 다카야마를 걷는다. 교토의 기온거리처럼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마을은 교토보다 한적해서 돌아보는 내내 마음이 넉넉해진다.
다카야마는 고산(高山)이라는 뜻으로 주변에 높은 산이 많다. 거리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트레킹을 온 외국인을 종종 볼 수 있었던 이유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 그래서 근처에는 스키장도 많다. 마을은 미야가와를 중심으로 목조가옥이 늘어서 있다. 에도시대 상인이 많이 살아서 상업 중심지로 번창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다카야마 마쓰리는 일본 3대 아름다운 축제로 꼽힌다. 다카야마 마쓰리는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며 봄에는 히에 신사, 가을은 사쿠라야마 하치만구가 중심이 돼 펼쳐진다. 히다의 전통적이고 세련된 조각을 새긴 야타이(수레)와 정교한 꼭두각시 인형이 마을을 돌아 다니며 흥겨운 축제를 벌인다. 거리 곳곳에 세워진 미니 야타이가 마쓰리 열기를 짐작하게 한다.
전통 상점 거리, 후루이 마치나미
400년 전 에도 문화와 교토 문화가 어우러진 역사 깊은 거리 후루이 마치나미는 일본의 ‘주요 전통건물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가옥 대부분이 에도 시대 전통가옥으로 짙은 갈색의 건물이 늘어선 거리는 정돈된 느낌이다. 가옥들은 양조장, 전통 생활 소품점, 카페, 레스토랑 같은 상점이 대부분이다. 기후현 북부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 한다.
거리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군것질도 많다. 히다규가 유명한 지역이니 히다규 스시를 파는 상점 앞에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진다.
상점 거리에는 주조장이 많다. 주조장을 통째로 싸들고 오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사케가 있다. 이들의 영업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 300엔짜리 작은 사케 잔을 사면 진열돼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케를 무제한 시음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부터 낮은 술까지 지금껏 다녀본 주조장 중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사케를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이 가게는 서양인이 많았는데 스페인어를 쓰는 한 남자는 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연신 시음을 하다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곳에서 파는 사케는 과일 향기가 나는 화이트와인 같은 느낌이다. 첫맛보다 뒷맛이 진하면서 묵직한 곡향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쌌다.거리에는 오후의 햇살도 물러가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건물은 더 운치 있는 빛을 낸다. 격자무늬가 드리운 가옥의 창에 불이 켜진다. 6시가 되면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도 흩어지는 소도시에 적막한 기운이 감돈다.
나고야=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