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화재 왜 국내에서만 날까… 설계오류 등 추정

전문가들, 국가별로 다른 규제 주목…"부품은 해외차와 동일"

올해 들어 주행 중인 BMW 차량에서 27건의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유독 국내에서만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BMW 코리아가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국내 판매 차량에 적용된 시스템의 설계상 오류가 있거나 엄격한 국내 배출가스 규제에 맞추기 위해 만든 특수한 흡기 구조 때문일 수 있다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BMW 코리아가 공식적으로 밝힌 차량 화재의 원인은 엔진에 장착된 부품인 EGR(배기가스 재순환 장치)의 결함이다.

EGR은 디젤 자동차의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배기가스의 일부를 흡기다기관으로 재순환시키는 장치다.엔진에서 발생한 고온의 배기가스는 곧바로 배출하지 않고 EGR 쿨러(냉각기)를 거쳐 식힌 뒤 엔진에서 재연소해 유해물질을 줄이는 과정을 거친다.

리콜 대상이 된 BMW 차량의 경우 EGR 쿨러와 배기가스 양을 조절하는 EGR 밸브가 오작동해 제대로 식지 않은 고온의 배기가스가 흡기다기관으로 다량 유입되면서 구멍이 나고, EGR 파이프에 껴있는 침전물에 불이 붙어 엔진 화재로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EGR이 국내 판매 차량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다수의 디젤 차량에 장착된 부품인데도 해외에서는 EGR이 원인인 화재 사고가 보고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11월 미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BMW 차량 100만대가 리콜된 적이 있지만, 당시 원인은 EGR이 아니라 배선 과열 등 다른 것이었다.

BMW 코리아 관계자는 "한국 이외에서는 같은 원인의 화재 사고가 보고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유럽과 한국에만 디젤차가 많고, 한국은 특히 520d 모델이 많이 팔렸다는 점에서 화재 사고가 유독 많이 보고되는 것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BMW 코리아는 한국의 기록적인 폭염이 EGR에 일부 과부하를 유발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자동차 전문가들도 폭염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다고 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EGR이란 하드웨어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불이 나는지를 생각해보면, 하드웨어와 함께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에 이상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차량에 각국의 자동차 정책과 법규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된 전자제어장치(ECU)를 탑재하는데, 국내에서 판매된 BMW 차량의 ECU에 적용된 조건 중 일부가 잘못돼 하드웨어에 과부하가 걸려 화재를 유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공학적 측면에서는 차량이 갑자기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대비할 수 있는 능력, 즉 예비율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상태에서 폭염이 겹쳐 한꺼번에 사고가 터져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정 부품만 교체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국내 배기가스 법규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명장은 "국내에 판매되는 디젤 차량은 질소산화물 배출을 더 많이 줄이기 위해 흡기 구멍이 다른 나라보다 크게 만들어졌다"며 "이 구멍으로 뜨거운 배기가스가 한꺼번에 많이 유입되면서 EGR에 과부하가 걸리고 화재에 노출될 위험이 더욱 커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BMW 차량은 고성능 엔진이라 다른 차보다 EGR 파이프에 오일 찌꺼기가 많이 끼고 엔진 자체에 열이 많다"면서 "이런 차에 가연성인 플라스틱 재질의 흡기다기관을 쓰는 근본적인 관행을 고치지 않는 한 리콜 후에도 화재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BMW 코리아는 국내 판매 차량에만 특정 부품을 사용해 불이 났을 것이란 일각의 추측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BMW 코리아 관계자는 "리콜 대상이 된 차량은 모두 독일에서 제조됐고, 독일에서 생산돼 다른 나라로 수출된 차량과 동일한 부품이 사용됐다"며 "국내에만 특정 부품이 들어갔다는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김필수 교수도 "국내에 수입되는 차에만 단일 품목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똑같은 부품이 해외 판매 차량에도 들어간 것으로 안다"면서 "부품 자체보다는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