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되면 에어컨 꺼져 '찜통'… 일거리 들고 카페 가는 공무원들

“요즘 야근할 때면 더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일은커녕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경체부처 A 서기관)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매일 저녁 6시마다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일거리가 남은 공무원들이 ‘찜통’이 된 사무실을 뒤로하고 인근 카페로 달려간다. 세종청사는 총 17개 동에 일괄적으로 냉방을 하는 지역 냉난방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세종청사관리본부가 정한 에어컨 가동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아침저녁으로 초과근무가 잦은 중앙부처 공무원이 “아침 9시 전 출근하자마자 녹초가 되고 저녁부터는 숨이 턱턱 막혀 정신을 잃는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다. 기자가 지난 1일 오후 7시 확인한 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사무실 온도는 34도에 육박했다.그렇다고 근무시간에 쾌적한 온도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청사를 비롯한 대부분 공공기관은 냉방설비 가동 시 실내온도를 평균 28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산업부 고시인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아서다. 주말을 비롯한 공휴일엔 아예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휴일에도 일할 때가 많은데 사무실에서 도저히 일할 수 없어 집 앞 카페로 향한다”고 했다.

폭염이 연일 이어지자 ‘야근 금지령’을 내린 정부 부처까지 나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일 금융위 간부들에게 “불필요한 회의는 지양하고 업무시간에 집중해 야근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오후 6시20분부터는 국·과장들이 남아 있는 직원을 파악하고 귀가시키라는 지시도 내렸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금융위는 정부 부처 중에서도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다. 금융위의 한 사무관은 “집중한다고 업무시간에 끝날 업무량이 아니다”고 푸념했다.

업무 공간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고위공무원은 청사에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한 사회부처 장관은 서울에서 야근할 때면 무더운 정부서울청사 대신 에어컨이 나오는 산하기관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출장이 많은 차관과 실·국장도 요령껏 더위를 피한다. 세종청사에 남은 서기관, 사무관만 죽을 맛이다.공무원 사이에서는 이상기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에너지이용 합리화 규정을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적정 실내온도가 28도로 설정되기 시작한 건 40여 년 전인 1980년 7월21일이다. 당일 서울지역 최고기온은 25.1도였다. 38년이 흐른 지난달 21일 서울지역 최고기온은 37도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