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7~9월 전기료 10% 인하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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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 주택용 인하 방안 발표“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일 500건을 돌파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전기료가 두려워 에어컨을 마음대로 켜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누진제 폐지 대신 7~9월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를 환급하거나 누진제 일부 구간을 높이는 방식을 통해서다. 다음주부터는 각 가정에 ‘전기료 폭탄 고지서’(7월분)가 발부된다.◆세계 최고 수준의 누진배수한국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누진배수가 적용되고 있다. 한 달에 200㎾h 이하(1단계)의 전력만 사용하면 ㎾h당 93.3원의 비교적 낮은 요금을 매기지만 201~400㎾h 구간(2단계)에는 187.9원, 401~1000㎾h(3단계)엔 280.6원씩을 부과한다.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상시 가동하면 슈퍼요금제 대상이 될 수 있다. 1000㎾h를 초과하면 기본단위당 709.5원의 ‘징벌적’ 요금을 내야 한다. 전기요금 누진배수는 최소 3배, 최대 7.6배다.
1순위로 부가세 환급 검토
日 전기료 누진배수 1.5배
한국은 최대 7.6배 달해
"누진제 개선해야" 목소리
이와 달리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선 전기요금 누진제를 아예 적용하지 않고 있다. 전기 사용량만큼만 요금을 내는 게 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1.1배) 캐나다(1.5배) 일본(최대 1.5배) 등의 전기요금 누진배수도 한국의 절반 이하다. 곽상언 법무법인 인강 변호사는 “똑같은 에어컨을 사용하는데도 기업 및 상가와 달리 주택에만 몇 배 높은 요금을 매기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며 “값싼 1단계 요금의 수혜자 중 90% 이상이 저소득층이 아닌 1인 가구란 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민 커진 정부정부는 이르면 다음주 초 전기요금 한시 인하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오는 6일부터 7월분 전기요금 고지서가 발부되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지난달 말 “이번 폭염이 특별 재난에 준하기 때문에 전기요금과 관련해 특별 배려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총리 발언 직후 총리실 산하에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공사 등으로 구성된 비상대응팀이 꾸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장 누진제를 폐지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부가세 환급이나 누진구간 일부 조정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 7~9월 전기요금 부가세(10%)를 환급해주는 게 손쉬운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 세수만 조금 줄어들 뿐 올 상반기에만 5000억원가량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전의 재정 부담도 낮춰줄 수 있다.
누진제 일부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예컨대 월 400㎾h까지인 2단계 상한을 500㎾h 정도로 완화하는 식이다. 올여름 에어컨을 추가로 사용한 가구의 요금 부담을 10% 안팎 낮춰줄 것이란 계산이다.◆“과도한 누진제 손봐야”
하지만 이 정도의 제한적 대책으로 ‘폭염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도시에 거주하는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이 350㎾h 정도인데, 열대야까지 장기화되면서 평균 사용량이 500~600㎾h를 훌쩍 넘었을 게 뻔해서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누진제 자체를 손보지 않고 이상 기온 때마다 전기료를 낮춰주면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만 줄 우려가 있다”며 “누진제의 1단계 요금을 올리고 3단계를 내려 누진배수를 최대 1.5~2배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