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쓰나미 공포에 아비규환"… 롬복 관광객들이 전한 지진 순간

"영화같고 현실감이 없었다. 실제로 당하니까 몸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규모 7.0의 강진이 덮친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롬복 연안의 작은 섬에 고립됐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지진 발생 당시 상황이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고 7일 전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이 전날 준비한 구조보트를 타고 길리 트라왕안 섬을 빠져나와 롬복의 중심도시 마타람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 최우영(41·여)씨는 "동네 사람과 여행객들이 다친 줄조차 모르고 이리저리 뛰었다"며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그는 "우리가 있던 장소는 골목길이었고 벽이 잇따라 무너지자 서로 빠져나가려고 밀치다 보니 혼란이 더욱 심했다"고 말했다.
최씨와 함께 롬복에 도착했다는 정미라(39·여)씨는 "흔들림이 일어 호텔 바깥으로 뛰쳐나오니 전기가 끊겼다.

바로 앞 담벼락은 물론 곳곳에서 건물이 부서져 먼지로 눈앞이 뿌옇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발목을 심하게 삐는 바람에 최씨에게 업힌 채 섬내 고지대로 대피해 그대로 밤을 새웠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모두들 현지 주민이 구해준 박스에 앉거나 누운 채로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침까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면서 "이튿날 아침부터 배를 이용해 대피가 시작됐지만 진척이 느려 오후 3시께 직접 다른 배를 구해서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tvN '윤식당' 촬영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 섬에는 지진 당시 1천여명의 내외국인 관광객이 머물고 있었으며, 이중 약 80명은 한국인이었다.길리 트라왕안 섬과 가까운 방사르 항(港) 주변 지역은 이번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도로가 갈라지고 건물이 많이 무너졌다.

사람도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앞서 현지 재난당국은 방사르 항 주변을 비롯한 북(北) 롬복 지역의 건물 70%가 무너지거나 손상됐다고 밝힌 바 있다.

길리 트라왕안 섬을 빠져나온 외국인 관광객 일부는 현지 호텔의 안전성을 믿지 못해 아예 공항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오빠와 함께 롬복을 여행 중이었다는 체코인 관광객 미카엘라(27·여)는 "어제 길리 섬을 빠져나와 보니 롬복 전체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시내 호텔은 안전을 믿을 수 없어 섬내에서 가장 안전한 것으로 보이는 공항에 머물며 내일 비행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진이 시작됐을 때 우린 식당에 있었다.

벽이 갈라지고 정전이 되자 바깥으로 나와 모두들 이리저리 뛰고 있었는데, 지진이 엄청 강해서 자꾸 사람들이 넘어졌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눌리아(30·여)는 지친 얼굴로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

방사르에서 공항으로 올 때도 방법이 마땅찮아 (보통 가격의 3배인) 100만 루피아(약 7만8천원)를 택시비로 냈다"고 말했다.

길리 트라왕안 섬에는 아직도 대피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관광객들은 7일 오전 모두 빠져나왔다"며 "방사르항에 대사관 직원과 버스를 대기시켜 소개가 이뤄지는 대로 안전한 장소로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7일 새벽 4시 24분께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나는 등 롬복 섬 북부에선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은 현지시각으로 지난 5일 오후 7시 46분께 롬복 섬 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강진으로 현재까지 최소 98명이 숨지고 236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롬복 섬을 관할하는 누사텡가라바랏 주정부 등에서는 사망자가 140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최대 피해 지역인 방사르 항 주변 마을 등에 대한 수색작업이 완료되면 사상자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