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참전용사 예우'가 너무 다른 韓·美

홍영식 논설위원
미국 현충일인 지난 5월2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경기장에서 찍힌 한 사진이 미국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야구장 관중석에는 ‘전쟁 포로와 실종자를 위한 빈 의자(empty seat for POW-MIA)’가 마련돼 있었다. 학생군사교육단(ROTC) 정복을 입은 학생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부동자세로 그 의자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 옆의 한 관중이 학생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다.

미국 대부분의 운동경기장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빈 의자를 하나씩 두고 있다. 살아 돌아와 가장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미국이 순국·참전용사들을 각별하게 예우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의 구호는 ‘그들이 조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다. 전사자가 돌아올 땐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이들을 맞이하는 게 관례다. ‘군복이 존경받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들이 조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지난 7월27일, 미군 유해 55구가 북한에서 송환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런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언론들은 “영웅들이 귀환했다”며 크게 다뤘다.우리는 어떤가. 현 정부 들어 국가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고, 참전유공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등 예우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금전적 보상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이들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문화가 얼마나 정착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6월29일 열린 제2연평해전 16주기 기념식만 봐도 그렇다. 유가족, 참전 용사와 2함대사령부 장병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통령이나 총리는 고사하고 국방부 장관도 그 자리에 없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4월 남북한 정상회담 때 합의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 조성 추진’ 등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간 ‘공무 중 사망’으로 남아 있던 희생 장병들이 13년이 지난 2015년이 돼서야 ‘전사자’ 대우를 받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순국용사들에 대한 우리의 예우 수준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자유는 수많은 희생의 결과지난달 장병 5명이 순직한 해병대 상륙 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때도 마찬가지다. 사고 3일이 지나서야 대통령이 애도를 표했고, 국방부가 따라 했다. 청와대는 아무도 조문하지 않다가 사고 난 지 6일 만에 열린 영결식 때 달랑 국방개혁비서관 한 명만 보내 유족들 가슴을 더 미어지게 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정전협정일을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날’로 정해 매년 이날이 되면 조기를 내걸고 추모한다. 한국도 2013년부터 정전협정일을 ‘정전 기념 및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했지만, 거의 잊혀진 날이 됐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 있는 미군 유해 송환을 추진해 지금까지 272구를 돌려받았다. 반면 북한 땅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만 구의 국군 유해와 500여 명의 국군 포로들에 대해 역대 어느 정부도 송환해 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순국용사들을 기리는 데 소홀히 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려 하겠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수많은 희생의 결과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감사해야 하는 것에는 무관심한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