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10월부터 저축銀 예·적금으로도 굴린다

OK·KB·페퍼 등 20여곳
최고 年 2.8% 상품 출시

은행·증권·보험 등이 주도한
퇴직연금 시장 판도 흔들 듯

저축은행 반응은 엇갈려
"고객 확보" vs "오히려 손해"
오는 10월부터는 퇴직연금을 연 2%대 금리를 지급하는 저축은행 예·적금으로 굴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퇴직연금으로 편입 가능한 원리금보장상품 범위에 저축은행 예·적금이 추가되고 저축은행들이 관련 상품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연간 수익률 1%대에 그쳐 수익률이 낮다는 퇴직연금의 시장 판도가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 2%대 금리로 도전장최근 OK, KB, 페퍼 등 20여 개 저축은행은 퇴직연금으로 운용할 수 있는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 업체들은 이르면 10월부터 퇴직연금 전용 예·적금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적립금에 대한 기본 수익률은 현재 저축은행 예·적금 금리와 비슷한 연 2.5~2.7%가량으로 제공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저축은행은 연 2.8%까지 검토 중이다.

이 같은 변화는 그동안 은행, 생명보험사, 금융투자사, 손해보험사 등이 주도해 온 퇴직연금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존 퇴직연금 적립금의 연간 수익률은 1.88%(지난해 기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식혼합형이나 채권혼합형 펀드를 제외하고 원리금보장상품만 따졌을 때 연간 수익률은 1.5%다. 금융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의 기본 수익률이 연 2%대를 넘는다는 것은 확실한 유인책”이라며 “저축은행 예금이 퇴직연금 운용처로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이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든 것은 금융위원회가 퇴직연금 운용처로 저축은행 예·적금을 추가하기로 해서다. 금융위의 관련 규정은 다음달 개정된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저축은행마다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원까지 운용할 수 있다.◆저축은행 ‘메기’ 역할 기대

현재 퇴직연금 상품을 준비하는 저축은행은 20여 곳이다. 이 업체들은 최근 잇따라 신용등급 평가를 신청했다.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을 제공하려면 신용등급이 ‘BBB-’ 이상이어야 한다. 페퍼저축은행이 최근 BBB를 받았고 OK저축은행과 KB저축은행도 조만간 평가 결과를 받아볼 예정이다. KB저축은행 관계자는 “수익률이라는 확실한 강점이 있어 빠르게 입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고객 저변을 넓히는 기반으로 삼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도 “채널 다각화로 신규 고객 유입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저축은행도 있다. 저축은행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을 비롯해 웰컴저축은행, JT친애저축은행 등은 당장 퇴직연금 시장엔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들어가면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 규모가 워낙 커지고 있어서 부담스럽다”며 “높은 수익률을 앞세웠다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일단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관건은 가입자들이 얼마나 움직이느냐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중 저축은행이 현실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분야는 개인이 선택해 적립금을 운용하는 DC형과 개인형 IRP다. DB형은 회사가 운용을 지시하는 형태다. 회사는 DC형 퇴직연금 사업자로 금융회사를 여러 개 선정할 수 있다. 근로자는 이 중 한 곳을 골라 적립금 운용을 맡기게 된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사업자가 저축은행과 계약을 맺어 저축은행 예·적금에 투자할 수 있고,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저축은행 상품 가입을 요구할 수도 있다.

금융위는 퇴직연금 시장이 2020년 210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선 210조원 시장을 둘러싸고 은행, 생명보험사 등 기존 플레이어와 저축은행 간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저축은행이 ‘메기’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다른 금융사들도 수익률을 끌어올리려 하지 않겠느냐”며 “‘퇴직연금으로는 돈을 불리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