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 "달콤쌉싸름한 첫사랑 연대기…영화 같지 않아서 좋았어요"

22일 개봉 '너의 결혼식' 주연
운명적 사랑 믿는 승희 역 연기
"솔직 당당한 승희로 대리만족"

"남녀가 생각하는 첫사랑 달라
배우·스태프들 촬영 중단하고
열띤 토론까지 했죠"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승희가 ‘나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나쁜 애를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싶었죠. 감독님과 이야기한 끝에 승희의 나쁜 면모를 잘 살리면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승희 입장이 돼서 대본을 곱씹으니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보이더라고요.”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너의 결혼식’에서 운명적 사랑을 믿는 여자 승희를 연기한 배우 박보영의 말이다. ‘너의 결혼식’은 고등학생 때 만난 승희와 우연(김영광 분)이 사회 초년생이 될 때까지 겪은 다사다난한 첫사랑 연대기를 그린 작품. 판타지, 첩보, 스릴러 등 강렬한 대작이 쏟아지는 가운데 올여름 극장가의 유일한 로맨스 영화다.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첫사랑의 설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극 중 우연은 10년이 넘도록 첫사랑 승희만을 바라보지만 사랑의 타이밍은 매번 어긋난다. 승희는 우연에게 “좋은 아이였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지기도 하고, 대학까지 자신을 따라 온 우연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한다. 영화가 우연의 시선으로 전개돼 승희는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냉정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촬영 현장에서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첫사랑에 대한 남녀의 시각 차이로 촬영을 중단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여자들에게는 마지막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이 제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첫사랑의 방이 있더라고요. 남자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첫사랑에 대해 가진 공통적인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건 그 친구가 나빴기 때문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승희가 이렇게 표현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승희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승희가 나쁘다’는 평을 들으면 내가 잘 해내지 못한 건가 싶기도 해요.”

박보영이 승희에게 느낀 가장 큰 매력은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사랑하는 것이었다. “승희는 솔직하고 당당한 친구예요. 전 평소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거든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넘어가요. 그래서 똑 부러지는 승희가 부러웠습니다. 승희를 통해 대리만족하기도 했죠.”박보영은 ‘너의 결혼식’이 정말 현실 남녀의 이야기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영화에는 고궁으로 데이트를 간 승희와 우연이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승희는 심각하게 말을 건네지만 우연은 대수롭지 않은 듯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이 때문에 말다툼이 시작된다. 박보영은 “영화에서는 삭제됐지만 원래 계단에서 두 사람이 더 싸운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진짜 화가 나서 대사도 계속 틀렸다. (김)영광 오빠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따지기도 했다”며 웃었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박보영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싱글맘 황정남 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데뷔 12년 차인데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운 매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로 작고 귀엽다고 해서 ‘포켓걸’이라는 별명도 있다. 하지만 이젠 포켓걸 이미지가 벗어야 할 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승희를 마냥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며 비슷한 캐릭터 속에서도 사뭇 다른 느낌을 찾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놨다.“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주위에서도 ‘그냥 너, 잘하는 거 해.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건 네가 잘한다는 뜻이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어’라고 조언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한테 까칠하고 이상한 면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박보영은 ‘너의 결혼식’에서도 나름대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사랑스러움에 새로운 모습을 씌워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 지금은 그 정도로 위안을 얻고 싶단다. 첫사랑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면 어떻겠냐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거창한 수식어를 바라진 않아요. 지금은 어떻게든 기본만큼은 잘해내는 게 목표예요.”

글=김지원/사진=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