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특허괴물' KDB펀드, 애플에 첫 특허침해 소송

옛 팬택 기술로 수익 남길까

팬택 휴대폰 특허 사들인 KDB
"애플 상대로 6건 침해訴 제기"

애플 "특허 무효" 맞소송

특허괴물 '먹잇감'이던 한국
글로벌 기업에 첫 '역공' 나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출자해 만든 한국형 특허관리 전문펀드가 팬택의 독자 기술을 인수해 미국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량의 특허권을 사들여 소송 및 특허사용료(로열티) 계약을 통해 수익을 얻는 ‘한국판 특허괴물’이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세계 5위 휴대폰 제조사였던 팬택은 작년 10월 청산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기술력은 살아남아 애플과 일부 기술의 ‘원조(元祖)’를 놓고 다투게 됐다.

◆“애플 6건 특허 침해”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KDB인프라자산운용이 운용하는 1000억원 규모의 KDB인프라IP캐피탈펀드는 작년 9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이 펀드는 외국 특허괴물에 맞서기 위해 2016년 국책은행인 산은과 기은이 500억원씩 출자해 만들어진 국내 첫 특허관리전문회사(NPE) 펀드다. 대체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산은 자회사 KDB인프라자산운용이 펀드 운용을 맡았다. 이 펀드는 팬택이 완전히 청산(2017년 10월)되기 전인 지난해 3월 팬택의 스마트폰 관련 특허 50여 건을 인수했고, 이 가운데 6건에 대해 애플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 역시 올해 초 특허무효심판 청구소송을 특허청에 제기하며 반격에 나섰다.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허침해소송 변론기일에는 애플 사내변호사가 참가하는 등 애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펀드가 애플이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6건의 스마트폰 기술은 △지도에 메모 작성이 가능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관련 기술 △애플워치 관련 블루투스 원격제어 기술 △문자 입력 시 커서 이동이 가능한 ‘반투명 가상키보드’ 기능 △전원이 갑자기 꺼져도 작성 중인 글이 자동 복원되는 기능 △문자 입력 시 연관 단어 제시 기능 △배경화면 설정 기능 등이다. 모두 원천 특허라기보다 사용자 환경(UI) 및 경험(UX)에 관한 디자인 특허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애플이 제기한 특허무효소송은 연내에, 펀드가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은 내년에 결과가 나올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펀드가 승소하면 애플은 소송 제기 시점(2017년 9월) 이전까지 이 기술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진다. 소송 시점 이후부터는 로열티를 내야 한다. 특허 법률전문가는 “애플이 패소하더라도 우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특허괴물들, 국내 업체 공격

이번 소송은 ‘한국판 특허괴물’을 표방하는 NPE 펀드가 처음으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특허권 인수 및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 특허괴물(NPE 업체)에 ‘먹잇감’이 되곤 했다.특허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해외 특허괴물이 제기한 미국 내 특허소송은 지난 1분기 36건으로, 전년 동기(18건)의 두 배에 달했다. 한국의 국제 특허출원 건수는 2016년 기준 세계 5위이지만 지식재산권(IP) 관련 무역수지는 2조5000억원 적자다. 과거 삼성전자에 집중되던 소송은 최근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LG전자는 올 들어 캐나다 NPE인 와이랜과 또 다른 NPE인 유니록으로부터 10건 이상의 특허침해소송을 당했다.

팬택은 2013년 세계 최초로 지문인식 기능을 담은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도난 방지 및 방수 기술 특허를 보유하는 등 세계적 기술력을 자랑했다. 한때 국내 3위, 세계 5위 휴대폰 제조업체로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하락으로 2014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5년 중계기 전문 업체인 쏠리드에 매각됐다.

쏠리드는 지난해 5월 스마트폰 사업을 중단했고, 10월엔 남은 특허권과 일부 자산마저 단돈 1000만원에 매각했다. 쏠리드는 2016년 230건에 달하는 팬택의 미국 특허를 현지 특허괴물인 골드피크에 매각했으며, 이 중 11건은 애플로 넘어갔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