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거리로… 국민건강 앞세워 '밥그릇 지키기' 급급한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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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혁신 없인 미래 없다“대한민국에 의료서비스는 있지만 의료서비스산업은 없다. 의료서비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해야 한다.”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이다. 위원회는 의료산업 육성의 한 축으로 원격의료(당시 E-헬스)를 꼽았다. 의사를 직접 보고 진료받는 국내 의료시스템에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환자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보고서가 발표된 지 10년 넘게 지났지만 원격의료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환자를 뺏길 것’이라는 동네의원 의사들의 반대, ‘의료영리화 수순’이라는 시민단체·정치권의 논쟁에 막혀 있다. 편의점에서 파는 안전상비약 명단 확대, 인터넷 안경 판매 등도 이익단체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누가, 왜 반대하나
"원격의료, 골목상권 침해"
"편의점 약은 오남용 우려"
동네 의사·약사·안경사까지
집단이기주의에 혁신 '발목'
'의료 영리화 수순'이라며
시민단체·정치권도 가세
원격의료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원격의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뒤 더욱 커지고 있다. 박 장관은 “첨단기술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의료기술을 외면하다간 추락할 수밖에 없다”며 원격 의료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의사들은 복지부에 원격의료 범위와 대상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여당도 가세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원격의료를 추진하면 의료가 영리화 될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2011년부터 세 차례 국회에 발의됐지만 모두 통과하지 못했다. 원격의료 반대에 앞장서며 2014년 3월 파업을 주도한 대한의사협회는 ‘골목상권 보호’ 논리까지 내세웠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환자들이 대형 대학병원으로 쏠려 동네의원 의사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보건의료노동조합 등 노동단체,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은 원격의료 도입은 의료 영리화로 이어져 보건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편의점 상비약을 확대하고 안경을 인터넷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규제혁신 방안도 약사, 안경사 등의 반대에 막혀 있다. 약사들은 약국 밖 편의점에서 파는 약을 늘리면 특정한 대기업이 이익을 독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약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약사 출신 국회의원, 공무원들이 이 같은 주장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안경사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안경을 팔게 되면 영세한 동네 안경점들이 줄도산할 위험이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편의점 상비약 확대에 반대하는 약사들의 주장이 직역 이기주의라며 맞서고 있다. 정책이 추진되면 국민 편의가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지현/김기만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