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 '제 머리는 못 깎는' 로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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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들, 근로시간 조정 못해
고용 변호사들 불만 목소리 커져
“기업에는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면서 정작 로펌 내부에서는 회사와 고용 변호사가 서로 줄다리기만 하고 있죠.”

한 대형 로펌 3년차 고용 변호사의 말이다. 최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됐지만 개정법 적용 대상인 대형 로펌 중 상당수는 아직 근로자와 사측 간 근로시간 관련 합의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근로시간 제한 적용 대상인 7개 로펌(광장 김앤장 세종 율촌 바른 태평양 화우) 중 율촌 태평양 화우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로펌은 근로시간 조정과 관련해 의미 있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화우는 지난달 대형 로펌 최초로 사측과 고용 변호사들이 재량근로제에 합의했다. 율촌과 태평양은 재량근로제로 합의점을 도출하고 ‘최종 사인’을 앞두고 있다.

대형 로펌에서 고용한 변호사와 일반 직원은 근로자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사측은 고용 변호사 및 직원 대표와 근로 방식을 합의해야 한다. 대형 로펌들은 근로기준법의 실질 적용이 내년 1월1일로 미뤄진 만큼 당장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다. 시행은 지난달 1일부터 했지만 처벌 유예기간인 만큼 여유를 갖고 근로자와 합의하겠다는 취지다. 대형 로펌 상당수가 ‘다른 로펌에서 어떻게 하나 보고 있다’고 설명하는 배경이다.

합의가 늦어지면서 고용 변호사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5년차 대형 로펌 고용 변호사는 “어차피 재량근로제로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게 되면 업무 강도는 그대로면서 임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재량근로제란 근로자 스스로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간을 정해 일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고용 변호사는 각 팀 파트너 변호사에게 업무를 지시받는다. 기존에는 업무량이 많아 야근이나 휴일근무가 잦았다. 앞으로는 업무는 그대로 하면서 시간은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트너 변호사와 로펌 경영진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대형 로펌에서 밤낮 휴일 없이 일하는 것 모르고 들어온 고용 변호사가 있느냐”며 “받던 돈은 그대로 받고 일은 줄여달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영담당 변호사는 “재량근로제 이후 실질적으로 일을 줄이려면 고용 변호사를 더 뽑아야 하는데 로펌으로서는 경영상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용 변호사들의 ‘조직력’에 따라 각 로펌의 사정도 다르다. 가장 먼저 합의를 한 화우는 고용 변호사들이 나름의 조직을 꾸리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와 적극적인 협의가 가능했다. 율촌은 따로 조직이 없어 형식적 조직체를 구성해 협의했다. 고용 변호사들의 단일 조직체가 없는 김앤장 광장 바른 등의 내부 논의가 늦어지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게 로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