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성비 좋은 노인 복지수송 제도

김태호 < 서울교통공사 사장 taehokim@seoulmetro.co.kr >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영화화된 것을 재미있게 봤다. 주인공 알란은 100세 생일파티 직전에 일상의 갑갑함과 지루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양로원을 나와 목적지 없이 떠난다. 겉모습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긍정적인 자세로 새로운 세상에 도전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노인의 현실은 영화 속 알란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다. 자살 원인 가운데 질병,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인한 우울증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가파르게 증가해 2030년 24.3%, 2060년 40.1%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문제는 앞으로 더 큰 사회적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야외활동은 노인의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가장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을 쬐면 신경안정에 도움을 주는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의 야외활동을 촉진하는 일등공신이다. 교통비가 공짜인 덕분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창밖을 구경하며 적적한 시간을 달래기에는 이만 한 게 없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지난해 열린 ‘도시철도 무임수송비용 국비 보전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는 비용편익이 1.4로, 100원을 투자해 140원을 얻는 셈”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착한 정책이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무임수송 비용은 해마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수송원가에도 못 미치는 요금으로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적자는 한계에 이르렀다. 열악한 재정 여건 아래 안전운행에 필수적인 노후 시설물 교체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최근 무임승차 제도의 존폐를 두고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시류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책적 접근 방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제는 교통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 복지정책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노인의 건강권과 행복권 보호를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을 ‘복지수송 제도’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수시변역(隨時變易)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