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미세먼지 그리고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

올 여름 한반도는 더워도 너무 덥다. 현대 문명의 번창에 따른 기후변화의 역습이 이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더위 때문에 잊혀 졌지만 2018년 4월 6일 서울 잠실구장, 인천 문학구장, 수원 구장에서 프로야구경기 3 경기가 취소되었다. 비 때문이 아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프로야구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잠실구장이 위치한 잠실동의 미세먼지 수준이 매우 나쁨의 기준인 100mg/m3의 거의 4배 수준인 377mg/m3 이었다.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일부는 중국에서 날아온 것도 있지만 국내에서 만들어진 양도 상당한 수준이다.

미세먼지는 온실가스와는 다르게 정의되고 있지만, 만들어지는 주요 원인은 마찬가지로 석탄과 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의 연소이다. 특히 청정에너지로 인식되는 LNG는 연소생성물의 많은 부분이 초미세먼지가 된다. 그러므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만 미세먼지는 물론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의 에너지정책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이다.프랑스는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대신 전원의 75%를 담당하는 원자력의 의존도를 2025년 까지 50%로 낮추는 에너지전환정책을 2015년에 만들었다. 하지만 원자력에서 재생에너지로의 급격한 에너지전환이 파리 기후협약에서 약속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와 전력공급의 안전성, 그리고 일자리 축소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되어 원자력의 비중을 줄이기로 한 목표 연도를 2030년 내지는 2035 년으로 연기하는 결정을 2017년에 하였다.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 방법으로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고 있으나, 탈원전 과정에서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자체 생산하는 갈탄과 수입하는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그 결과 온실가스 감소율이 둔화되고 있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적인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다른 나라들은 우려하고 있다.

영국도 유럽의 온실가스 감축을 법제화함에 따라 청정 에너지원 확보를 위하여 재생에너지의 이용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독일과 다르게 원자력 발전소의 신규 건설도 다시 추진하고 있다.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원자력발전소 운전을 전면 중지함에 따라 부족한 에너지를 천연가스, 신재생에너지의 수입을 늘려 충당하였으나 2013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고치에 달했다. 전기요금도 20%가량 올랐다. 한편으로는 후쿠시마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기준에 맞추어 원자력발전소의 설비를 개선하여 운영하려는 발전소의 수는 점점 증가하여 현재 9기의 원전의 가동 승인된 상태이다. 지난 7월 초에는 2030년에 원자력발전의 비중이 20~22 %로 하는 전략에너지계획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주요 선진국들의 장기 에너지 정책을 종합해보면 프랑스, 영국, 일본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두 개의 축으로 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석탄과 원자력의 이용을 줄이고 대신 태양광이나 풍력을 늘이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은 우리가 24시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흐리거나 밤에는 태양광을 이용할 햇빛이 없다. 바람 잠잠한 날이면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는 쉰다. 그러면 이때 필요한 전기는 추가로 만들어둔 LNG발전소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LNG 발전소 굴뚝에서는 석탄발전소에서 보이던 연기가 없으니 깨끗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석탄발전소의 반 정도, 석유발전소의 3/4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또한 미세먼지 발생원 중 하나인 NO2도 발생시킨다. 결과적으로 LNG발전소가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선진국들에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데 고려하는 요소는 온실가스 감축뿐만이 아니다. 에너지는 바로 국가의 동력이므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하는 에너지 안보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이다.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프랑스는 1974년 오일파동 이후 4배나 오른 유가의 충격 이후 에너지안보를 위하여 원자력을 주에너지원으로 하는 정책을 펼쳐 에너지자급률을 10.6%에서 55.9%롤 높였다. 2015년 결정한 에너지전환정책에서도 원자력의 비중은 줄이지만, 원자력 발전량은 63.2GWe를 유지한다. 영국은 북해산 석유 덕에 100%를 상회하는 에너지 자급률을 유지하다, 1999년 이후에 오일, 천연가스, 석탄의 생산이 줄면서 2015년에는 에너지자급률이 66%까지 떨어졌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재개하는 동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력을 제외하면 에너지 자급률은 3.2%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의 6.5%보다도, 프랑스의 10.6% 보다도 못하다. 그렇다고 국토면적 등 태양광이나 풍력을 이용할 여건이 이들 나라보다 좋은 것도 아니다.

현재의 국가 에너지정책에 따르면 태양광이나 풍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수입되는 LNG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청정에너지인 태양빛과 바람을 이용하는 방안에 반대할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태양빛과 바람이라는 문패를 달고 실질적으로는 화석연료가 이용되어서는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감축을 실현할 수 없을 뿐더러 오일쇼크가 다시 오지 않기를 매일매일 기도해야할 것이다. 봄에는 미세먼지, 여름에는 살인적인 더위, 겨울에는 혹한의 위협이 번갈아 도래하는 한반도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이 정의로운 에너지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되는 중요한 시점을 마주하고 있다.

세종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해용

정리=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