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지금까지 한 우물 팠다면 이젠 시야 넓힐 때

스워브

닉 러브그로브 지음 / 이지연 옮김
마일스톤 / 452쪽│1만8000원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의 에릭 랜더 소장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푸는 게놈 프로젝트를 처음 주도한 사람이다. 그는 생물학, 의학, 유전체학 분야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리더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이들 분야 중 어느 하나도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대학에서는 수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수도사 같은 수학자의 삶을 사는 것이 싫다”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수업을 가르칠 기회를 잡았다.

경제학을 가르치면서도 랜더는 과학적 호기심에 이끌려 생물학 실험실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마침 MIT 유전자 연구소에서 유전자 특징을 풀어낼 수학자 한 명을 찾는 데 지원했다. 그는 자신이 배운 수학을 생물학에 결합해 염기서열 분석에 응용했다. 그가 시작한 작업에 점점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결국 15년간 인간 유전자 지도를 풀어내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됐다.랜더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분야를 옮겨 다녔다. 그 결과 기존의 학문이 교차하는 곳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영역을 찾아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폭넓은 경험을 거친 사람들이 성공적인 인생과 커리어를 찾아낸 경우가 많다. 30년간 매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한 닉 러브그로브 미국 조지타운대 실전경영학 교수는 《스워브》에서 좁은 분야의 깊이를 더하는 삶보다 다양한 분야로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진단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내가 종사하는 직업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지금, 한 우물만 파는 것은 ‘하나밖에 모르는 바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스워브(swerve)는 ‘방향을 바꾸다’라는 영어 단어다. 위대한 커리어를 완성한 사람들은 직선이 아니라 꼬불꼬불한 곡선으로 움직이며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 미국 최고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저스는 뉴욕의 헤지펀드에서 계량 금융분석가 및 트레이더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매업계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아마존의 최초 콘셉트를 생각해냈다. 페이팔의 공동 창립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투자자로 손꼽히는 피터 틸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로스쿨 졸업 후 판사 보좌관으로 일했다. 크레디트스위스그룹으로 옮겨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다가 멀티전략펀드를 설립해 페이팔을 창업했다.

저자는 폭넓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여섯 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도덕적 나침반’은 여러 영역을 오가면서 이해관계에 상충하는 일이 벌어지거나 윤리적 딜레마를 만났을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돕는다. 회전문 인사란 일부 인사가 주요 보직을 돌아가면서 맡는다는 뜻이지만 원래는 공직 퇴임 뒤 민간기업, 단체 등에서 활동하다 다시 공직에 발탁되는 경우를 말한다. 도덕적 나침반은 회전문 상황에서도 개인적 욕망 대신 사회적 가치를 따르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저자는 폭넓은 경험을 뒷받침할 ‘지식의 중심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분야로 가더라도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키워야 갈팡질팡할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공통의 기초를 마련하는 ‘응용 가능한 능력’, 계획된 우연을 만드는 ‘인적 네트워크’, 잘 듣고 배우고 적응하는 ‘상황지능’, 현재에 충실하게 하는 ‘준비된 마음’이 폭넓은 삶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고 전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