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영도 철학하듯… 누구나 아는 상식에 물음표를 붙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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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택갑작스러운 정전으로 한 지하 슈퍼마켓이 암흑에 싸였다. 계산단말기도 작동을 멈췄다. 전력회사에서는 언제 복구될지 모른다고 한다. 당신이 이 슈퍼마켓의 직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건이 든 카트를 그대로 두고 안전하게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할까. 아니면 일단 물건을 가져가고 다음에 와서 지불해 달라고 부탁할까. 둘 다 아니었다. 실제 직원은 사려던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되 “물건값은 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주문했다. 미국의 작은 동네 슈퍼마켓에서의 일이다. 입소문을 탄 미담은 언론을 통해 전역으로 퍼졌다. 슈퍼마켓 본사 감사팀의 조사 결과 그날 정전으로 피해를 본 물건값은 4000달러였다. 이후 1주일간 미디어 노출에 따른 광고 효과는 40만달러에 달했다. 순간적인 직원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 됐다.
김형철 지음 / 리더스북 / 256쪽│1만5000원
경영할 때 질문의 중요성 강조
'불법 다운 어떻게 막을까'보다
돈 내고 내려받는 법 질문해야
방향 튼 물음서 창의적 답 나와
《최고의 선택》을 쓴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최상의 성과와 최선의 노력, 그리고 공생 정신을 ‘최고의 선택’ 조건으로 꼽았다. 저자는 “결국 비즈니스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철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강연으로 인기가 높다. 철학과 경영, 리더십을 엮어 ‘장자로부터 배우는 위기 극복’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철학경영’ ‘소크라테스의 질문 리더십’ 등에 대해 강연해왔다.
책도 말을 하듯 쉽게 썼다. 쉽지만 가볍지는 않다. 플라톤의 《국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제논의 역설, 로크의 인식론, 헤겔의 변증법 등을 경영과 접목한다. 선택의 기로에 선 수많은 기업의 성공과 실패 사례도 등장한다. “철학자는 진단을 잘하지만 처방은 잘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저자는 기업인들에게 행동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질문으로 생각의 길을 열어준다. 책을 구성한 22개 장도 모두 질문으로 이뤄져 있다. ‘회사에서 당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인센티브를 가장 정의롭게 나누는 방법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등이다.
질문의 중요성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어떤 조직이나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사례로,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마련해놓은 ‘딜레마가 있는 질문’ 코너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저자는 “질문하는 사람만이 답을 찾는다”며 “다만 그 질문은 항상 긍정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악 파일의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기 시작한 뒤 음반회사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때를 예로 들었다. 여기서 던진 질문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운로드를 못 받게 할까”가 아니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돈을 내고 다운로드를 받도록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서 애플의 아이튠즈가 탄생했다. 방향을 돌린 질문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해법은 간단하다. 창의적인 답을 얻으려면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저자는 “몸담고 있는 업계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열 가지 리스트를 만들고 그 상식에 물음표를 붙여라”며 “그러면 그 자체가 창의적인 질문이 된다”고 조언한다.조직의 리더, 상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들도 눈길을 끈다. 중세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도사인 윌리엄 오캄의 이름을 딴 ‘오캄의 면도날’에 빗대 걷어내야 할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비교적 자세하게,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간결하게 얘기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가 많다. 복잡한 매뉴얼과 절차를 들이밀고 꼼꼼한 사전 보고를 요구하는 상사들이다. 저자는 ‘충분한 교육과 훈련, 시간과 자원을 제공한 후’라는 전제가 있다면 “지시와 보고는 간단할수록 좋다”고 조언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는 군주가 아첨꾼에게 둘러싸이는 이유가 ‘화를 잘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화를 잘 내면 주변 사람은 눈치를 살피게 되고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군주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한눈에 알아보는 방법도 언급한다. 자신보다 똑똑한 부하를 몇이나 거느리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훌륭한 군주는 잘난 부하의 쓴소리를 즐기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군주’를 ‘리더’로 바꾸면 그대로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구절들이다. 저자는 리더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라며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물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매일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는 기업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찾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가이드와 철학적 사유법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저자의 의도가 잘 스며있는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