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끄고 잔 게 얼마 만인지… 열대야 사라진 날씨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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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에 시민들 밖으로, 폭염 지친 농민들도 분주
기상청 "모레 이후 기온 올라 다시 폭염 나타날 듯""간밤에 오랜만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잘 잤습니다.좀 살만하네요"
경북 포항에 사는 정승혜(44)씨는 지난밤 모처럼 개운하게 잠이 들었다.
계속된 폭염과 열대야로 연일 밤잠을 설치며 고생했는데 밤에 창문으로 찬바람까지 들어와 모처럼 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포항에서는 지난달에 19일, 이달에는 12일간 열대야가 발생해 많은 시민이 밤늦게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고통의 날을 이어갔다.엄예지(14)양은 "전기요금이나 냉방병 걱정으로 에어컨을 계속 켤 수도 없고 안 켜자니 너무 더워서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밤늦게까지 바닷가나 형산강 주변을 산책하며 더위를 식혔고 낮에는 피서를 겸해 냉방시설이 잘 갖춰진 대형마트를 찾기도 했다.
이렇게 기승을 부린 폭염도 16일 밤부터 한풀 꺾이는 모양새를 보였다.말복인 16일과 칠석인 17일 밤사이 전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면서 열대야가 멈췄다.
29일째 열대야가 지속한 전남 여수의 최저기온은 24.5도로 떨어졌고 27일째 열대야가 이어진 대전도 23.8도였다.
서울도 26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지다가 밤사이 최저기온이 22.1도까지 내려가면서 오히려 선선하다고 느낄 정도였다.강릉(18.8도), 청주(24.5도), 광주(24.2도), 대구(23.5도), 부산(23.5도), 제주(24.4도) 등도 최저기온이 25도 이하로 열대야가 사라졌다.
다만 서귀포 등 제주 일부 지역은 여전히 열대야가 시민들을 괴롭혔다.
폭염이 다소 주춤한 것은 우리나라 북쪽에 있는 고기압으로부터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이렇게 공기가 다소 식자 전북 전주에서는 16일 늦은 밤에도 언제 열대야가 있었느냐는 듯 편의점이나 가맥집(가게 맥줏집)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밝은 표정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강모(36)씨는 "근무를 마치고 회사를 나섰는데 바람이 무척 선선했다"며 "오랜만에 편의점 앞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즐겼다"고 말했다.
초가을 날씨를 보인 17일 오전 출근길에는 많은 운전자가 차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모두 내린 채 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운전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이기대 해안도로 등에는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운동 마니아들의 뛰고 걷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현대중공업 등 대규모 사업장에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근로자가 다소 늘었다.
제주에선 얇은 카디건 등 겉옷을 챙긴 주민들도 보였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올해 여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한숨만 나올 정도로 더웠다"며 "오늘 아침처럼 시원한 날씨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계속되는 폭염으로 개학 연기 민원이 속출했던 학교들도 한숨 돌렸다.
이번 주에 개학한 경기지역 한 고등학교 관계자는 "에어컨 실외기 용량이 작아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에도 금방 찜통 교실이 되곤 했는데 간만에 쾌적한 날씨가 찾아와 수업 환경이 한결 나아졌다"며 만족해했다.
무더위에 실내로만 찾아들었던 나들이객들도 바깥으로 몰려 한산했던 야외 유원지는 붐볐다.
인천 아라뱃길 자전거 도로에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러 나온 시민 발길이 이어졌다.
그늘이 없어 나들이객이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던 송도 센트럴파크와 인천대공원도 아침 일찍부터 선선한 날씨에 산책을 즐기는 시민이 눈에 띄었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대학생 이모(25)씨는 "더울 것 같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추워서 잠이 깼다"며 "오늘부터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아예 끄고 살아도 될 것 같다"고 선선해진 날씨를 반겼다.
폭염이 잠시 주춤하자 농가도 분주한 모습이다.
강원 춘천시 서면의 농민들은 김장배추 종묘 옮겨심기를 위해 묵은 땅을 다시 갈아엎고 밭고랑을 만드는 데 땀을 쏟았다.
농민 최영국(68)씨는 "주말까지 날씨가 선선하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작업을 마치려 일찍 밭에 나왔다"며 "밭고랑을 다 만든 후 비닐까지 씌워놓으면 한시름 놓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사과협회 안동지회 임영식 회장은 "지금까지 폭염에 사과가 델까 봐 잎을 따지 못했다"며 "수확을 앞둔 홍로 사과에 착색이 잘 되게끔 하려면 날씨가 선선한 오늘 잎을 정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여름 열대야가 완전히 물러갔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기상청은 "모레까지는 상층의 한기가 유입되면서 낮 기온 상승을 막아 폭염은 다소 주춤하겠고 열대야도 해소되겠으나 모레 이후 다시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주의보 수준의 폭염이 나타나고 열대야가 다시 나타나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김재홍, 전지혜, 류수현, 최은지, 김형우, 임채두, 김근주, 최재훈, 김소연, 이재현, 김동민, 장덕종, 최수호, 김용민, 손대성 기자)
/연합뉴스
기상청 "모레 이후 기온 올라 다시 폭염 나타날 듯""간밤에 오랜만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잘 잤습니다.좀 살만하네요"
경북 포항에 사는 정승혜(44)씨는 지난밤 모처럼 개운하게 잠이 들었다.
계속된 폭염과 열대야로 연일 밤잠을 설치며 고생했는데 밤에 창문으로 찬바람까지 들어와 모처럼 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포항에서는 지난달에 19일, 이달에는 12일간 열대야가 발생해 많은 시민이 밤늦게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고통의 날을 이어갔다.엄예지(14)양은 "전기요금이나 냉방병 걱정으로 에어컨을 계속 켤 수도 없고 안 켜자니 너무 더워서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밤늦게까지 바닷가나 형산강 주변을 산책하며 더위를 식혔고 낮에는 피서를 겸해 냉방시설이 잘 갖춰진 대형마트를 찾기도 했다.
이렇게 기승을 부린 폭염도 16일 밤부터 한풀 꺾이는 모양새를 보였다.말복인 16일과 칠석인 17일 밤사이 전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면서 열대야가 멈췄다.
29일째 열대야가 지속한 전남 여수의 최저기온은 24.5도로 떨어졌고 27일째 열대야가 이어진 대전도 23.8도였다.
서울도 26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지다가 밤사이 최저기온이 22.1도까지 내려가면서 오히려 선선하다고 느낄 정도였다.강릉(18.8도), 청주(24.5도), 광주(24.2도), 대구(23.5도), 부산(23.5도), 제주(24.4도) 등도 최저기온이 25도 이하로 열대야가 사라졌다.
다만 서귀포 등 제주 일부 지역은 여전히 열대야가 시민들을 괴롭혔다.
폭염이 다소 주춤한 것은 우리나라 북쪽에 있는 고기압으로부터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이렇게 공기가 다소 식자 전북 전주에서는 16일 늦은 밤에도 언제 열대야가 있었느냐는 듯 편의점이나 가맥집(가게 맥줏집)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밝은 표정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강모(36)씨는 "근무를 마치고 회사를 나섰는데 바람이 무척 선선했다"며 "오랜만에 편의점 앞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즐겼다"고 말했다.
초가을 날씨를 보인 17일 오전 출근길에는 많은 운전자가 차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모두 내린 채 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운전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이기대 해안도로 등에는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운동 마니아들의 뛰고 걷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현대중공업 등 대규모 사업장에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근로자가 다소 늘었다.
제주에선 얇은 카디건 등 겉옷을 챙긴 주민들도 보였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올해 여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한숨만 나올 정도로 더웠다"며 "오늘 아침처럼 시원한 날씨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계속되는 폭염으로 개학 연기 민원이 속출했던 학교들도 한숨 돌렸다.
이번 주에 개학한 경기지역 한 고등학교 관계자는 "에어컨 실외기 용량이 작아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에도 금방 찜통 교실이 되곤 했는데 간만에 쾌적한 날씨가 찾아와 수업 환경이 한결 나아졌다"며 만족해했다.
무더위에 실내로만 찾아들었던 나들이객들도 바깥으로 몰려 한산했던 야외 유원지는 붐볐다.
인천 아라뱃길 자전거 도로에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러 나온 시민 발길이 이어졌다.
그늘이 없어 나들이객이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던 송도 센트럴파크와 인천대공원도 아침 일찍부터 선선한 날씨에 산책을 즐기는 시민이 눈에 띄었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대학생 이모(25)씨는 "더울 것 같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추워서 잠이 깼다"며 "오늘부터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아예 끄고 살아도 될 것 같다"고 선선해진 날씨를 반겼다.
폭염이 잠시 주춤하자 농가도 분주한 모습이다.
강원 춘천시 서면의 농민들은 김장배추 종묘 옮겨심기를 위해 묵은 땅을 다시 갈아엎고 밭고랑을 만드는 데 땀을 쏟았다.
농민 최영국(68)씨는 "주말까지 날씨가 선선하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작업을 마치려 일찍 밭에 나왔다"며 "밭고랑을 다 만든 후 비닐까지 씌워놓으면 한시름 놓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사과협회 안동지회 임영식 회장은 "지금까지 폭염에 사과가 델까 봐 잎을 따지 못했다"며 "수확을 앞둔 홍로 사과에 착색이 잘 되게끔 하려면 날씨가 선선한 오늘 잎을 정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여름 열대야가 완전히 물러갔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기상청은 "모레까지는 상층의 한기가 유입되면서 낮 기온 상승을 막아 폭염은 다소 주춤하겠고 열대야도 해소되겠으나 모레 이후 다시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주의보 수준의 폭염이 나타나고 열대야가 다시 나타나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김재홍, 전지혜, 류수현, 최은지, 김형우, 임채두, 김근주, 최재훈, 김소연, 이재현, 김동민, 장덕종, 최수호, 김용민, 손대성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