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의 위스키 기행] 1982년 첫 국산 위스키 원액 생산… 외환위기로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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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 위스키의 도전과 실패1894년 바다 건너 문물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던 조선, 한 영국인 여성이 조선 땅을 여행하고 있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알현하고 조선 각지를 돌며 보고 느낀 것을 소상히 기록한 그는 3년 후 그것을 모아 여행기를 출판했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란 제목으로 발간된 책은 곧바로 영국 출판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국, 일본과 달리 통상의 문을 굳게 닫은 조선이 서구에는 미지의 나라로 비쳐져 많은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1980년 국산화 정책에 따라
3개 업체에 제조면허 발급
1990년까지 1만 배럴 증류
외환위기때 글로벌업체에 매각
한국에서의 생산 잇달아 중단
그의 저서에는 당시 젊은 양반들 사이에서 양주가 인기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당시 사진을 찾아보면 갓을 쓴 젊은 남성들이 호기롭게 서양 술을 마시는 모습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가 기록한 양반들의 운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국난으로 나라 살림은 피폐해져 수입 주류는 상상도 못할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광복 후 정부는 수입 주류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미군 군수품으로 나오는 위스키 외에는 구할 수 없던 시기였지만 사람들은 양주를 찾았다. 이는 곧 ‘도라지’ 등 유사 위스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유사 위스키란 주정에 인공 위스키 향료와 색소를 넣어 생산한 기타 재제주다. 위스키 원액은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유사 위스키를 마시며 기분을 냈다.
위스키 원액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70년대다. 단기적으로는 수입을 대체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조건으로 정부가 주류 수출 금액만큼 위스키 원액 수입을 허가했다. 이에 위스키 원액을 사용한 위스키가 시장에 나왔다.당시 시장에 위스키로 통용되던 제품은 크게 두 종류였다. 원액을 20% 넣은 위스키와 19.9% 넣은 기타 재제주였다. 주세법상 위스키는 원액을 20% 이상 넣어야만 인정되기 때문에 19.9%와 20%의 품질은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세금은 원액 20%인 위스키가 월등히 많이 냈다. 이들은 위스키 함유량이 100%는 아니었지만 마케팅을 위해 12년 연산 표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곧 스코틀랜드 위스키협회의 항의로 이를 철회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편 숙성 증류주에 매력을 느낀 소비자의 눈은 나날이 높아졌고, 원액 비중이 30% 이상으로 높아진 제품이 연이어 등장했다.
한국 위스키 시장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 행사를 기념해 1984년 7월 ‘패스포트’ ‘썸싱 스페셜’ ‘길벗 로얄’ 등 100% 위스키가 출시됐다.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영국,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는 위스키나 브랜디가 사치품으로 중과되는 한국의 주세 체계에 이의를 제기했다. 지속되는 통상 압력에 결국 양주류 주세가 대폭 낮아지고, 1980~1990년대에는 위스키 시장이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구가했다.
같은 시기, 국산 위스키 원액 개발도 진행됐다. 1980년 정부는 위스키 국산화 정책을 발표하고 당시 주류업계를 이끌던 OB, 진로, 백화 3사에 위스키 제조 면허를 발급했다. 원액 공장을 짓고 국산 위스키를 제조하는 조건이었다. 3사는 당시 2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설비를 도입하고 1982년 처음으로 국산 위스키 원액을 생산했다. 이들 3사가 1990년까지 증류한 위스키 원액은 약 1만 배럴로 추산되고 있다.1991년 주류 수입자유화에 의해 그동안 통제되던 주류 수입이 완전히 허용되면서 국산 위스키는 위기를 맞는다. 국내 업체들은 여럿이 나눠 마시고 병째 소비하는 국내 음주 문화에 맞춰 부드러움을 강조한 제품을 개발하며 난관을 타개한다. 이는 강렬한 훈연향이 특징인 스카치 위스키와 대비되는 점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위스키 시장을 이끌던 국내 업체들은 글로벌 주류업체에 인수됐다. 영국과 미국 등지에 다수의 증류소를 보유한 이들은 한국에서의 위스키 생산을 중단했고, 한국에서 생산되던 원액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2000년대 정점에 도달한 위스키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는 주류 시장과 반대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품위와 낭만을 상징하던 위스키도 어느덧 낡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지게 됐다. 여기에는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다국적 업계의 행보가 있었다.
주류는 그 술이 소비되는 사회 속 문화를 반영한다. 문화적 뿌리를 가꾸지 않고 이익만 탐하는 태도로는 시장의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국내 위스키업계의 자성이 필요한 시기다.
이종기 < 양조증류 전문가·세계술문화박물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