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노인의 지혜

고두현 논설위원
경찰과 소방관 500여 명이 사흘 동안 찾지 못한 실종 아동을 30분 만에 찾아내 화제를 모은 일본의 78세 남성 오바타 씨. 그가 아이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자원봉사자인 그는 “애들이 길을 잃으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며 “이 점에 착안해 뒷산을 집중수색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인의 지혜’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두 마리 말 중 어미와 자식을 구분해 보라”는 수수께끼에 “풀을 줘서 먼저 먹는 쪽이 새끼”라고 답해 목숨을 건진 얘기 등 일화가 수두룩하다. 자주 인용되는 ‘상속의 지혜’도 그중 하나다.한 노인이 소 17마리를 남기고 죽으면서 큰아들에게 2분의 1, 작은아들에게 3분의 1, 막내에게 9분의 1을 가지라고 유언했다. 아무리 나눠도 답이 나오지 않자 아들들은 동네 어르신에게 답을 구했다. 그는 “1마리를 빌려줄 테니 18마리 중 각각 9마리, 6마리, 2마리를 갖고 남은 1마리는 다시 날 주게”라고 했다.

연륜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노년의 지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는 기억 중심의 유동지능(流動知能·fluid intelligence)이고, 또 하나는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結晶知能·crystallized intelligence)이다.

유동지능은 연산·기억력 등 생래적인 것으로 한창 교육 받는 젊은 시절에 활성화된다. 반면 결정지능은 훈련·판단 등 후천적인 것으로 사회 경험이 풍부한 노년 시기에 강화된다. 이것이 노인들의 의사 결정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70세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 여성 경영자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멘토 역할’을 해 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혜는 모든 부를 뛰어넘는다”는 소포클레스의 명언 또한 이런 원리에서 나왔다.물론 나이 든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늙어서 탐욕을 부리는 노욕(老慾)이나 노탐(老貪), 신체적·정신적으로 보기 민망한 노추(老醜)는 경계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소리를 듣는 것도 딱한 일이다.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세대 간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노인의 지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혜로운 노인’이 되려는 노력이다. 그래야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노인의 모습은 그 곁에서 응원하고 위로하는 소년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그 꿈과 용기가 소년에게 이어지고, 소년이 자라 노인이 되듯 우리 삶도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노인은 ‘가정의 꽃’인 아이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