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흥한건설 부도… 경기 침체·'악성'미분양에 "1군 건설사도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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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금 납부 지연에 자금 압박…8·2 대책후 첫 부도경남 진주에 본사를 둔 시공능력평가 170위 흥한건설이 현금 유동성 악화로 지난 14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어 지역 건설사의 부도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심각…건설사 연쇄 충격 우려
건설업계 "정부 부동산 규제 전면 손질해야"
◆경기침체·정부 규제 ‘직격탄’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흥한건설은 지난 14일 부도처리된 뒤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했다. 자체사업으로 추진하던 ‘윙스타워(지식산업센터)’ 상가 등의 미분양, 도급 사업인 ‘사천 흥한 에르가’ 아파트(1295가구) 중도금 회수 차질 등이 부도 원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률은 70%를 넘었으나 정부의 대출 규제 여파로 일부 계약자가 중도금 납부에 차질을 빚었다”며 “시행사가 빌려간 대여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아 시공사인 흥한건설의 유동성이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흥한건설 계열사인 흥한산업도 16일 자금사정 악화에 따라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보증 대상인 ‘사천 흥한에르가 2차’ 사업에 대한 공사 진행 방안을 검토 중이다. HUG 관계자는 “흥한건설 아파트 사업장은 계약률이 높아 당장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다만 이번 부도를 계기로 다른 건설사들도 유동성 부족에 처할 수 있는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연쇄 부도 우려흥한건설 부도를 계기로 지방 부동산시장과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한층 가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분양 물량이 누적된 데다 이미 분양이 끝난 아파트 계약자들도 예정된 입주기간 안에 잔금을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살던 집이 팔리지 않으면 계약자들이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게 된다. 실제 전국을 무대로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개발을 다수 진행하던 D건설도 최근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상황을 모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창원에 아파트 4000여 가구를 분양하던 B사는 계약률이 10%에도 못 미치자 분양을 접고 계약금을 모두 되돌려줬다. 김진규 대한주택건설협회 울산경남도회 사무처장은 “조선·철강 등 지역 기반산업이 침체하면서 경남지역 경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며 “미분양도 심각하지만 분양이 잘 끝난 사업장도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방을 중심으로 악성 미분양 물량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6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 1만3348가구 중 약 80%인 1만712가구가 지방 물량이다. 경남에선 8·2대책이 나온 지난해 8월 724가구였으나 올해 6월엔 1776가구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충북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같은 기간 689가구에서 1264가구로 급증했다. 청주 일대의 사정이 심각한 상황이다. 오송제2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 동남지구 등 택지지구가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된 데다 도시개발사업, 지역주택사업, 도심공원화사업 등까지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공급 폭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서울이나 수도권 소재 1군 건설사들도 지방 분양시장에 많이 뛰어든 상황이어서 지방 침체는 지역 건설사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우려했다.◆“특단 대책 시급”
건설업계는 8·2대책 이후 고사 직전으로 내몰린 지방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8·2대책 이후 수도권의 집값은 더 오르고 지방만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정부 규제를 전면 손질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대비 올해 6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값은 5.06% 오른 반면 부산은 0.62% 떨어졌다. 울산의 하락폭(-1.45%)은 이보다 더 컸다.
이처럼 상황이 어려워지자 부산지역 주택업계는 정부를 상대로 부산지역 7개 구·군에 대한 ‘조정대상지역 지정해제’를 건의했다. 충북 건설업계도 이달 15일 충청북도에 아파트 공급과잉 대책 방안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충청북도 관계자는 “충북 지방세 중 취득세 비율은 50%”라며 “주택산업 침체로 인한 거래 부진이 지방재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선/서기열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