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스님 10개월만에 퇴진… 조계종 차기 경쟁 구도로

주류측은 "종헌종법대로", 비주류는 직선제 포함 근본 개혁 요구
은처자 의혹 등으로 종단 안팎의 사퇴 압력을 받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결국 퇴진했다.설정 스님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마지막 소회를 밝힌 뒤 수덕사로 떠남으로써 약 10개월 만에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동안 조계종은 설정 스님의 퇴진 여부와 퇴진 시점 등을 놓고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일단 설정 스님이 물러남으로써 차기 권력과 개혁의 주도권을 향한 종단 주류 및 비주류 세력의 대결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기득권 세력은 현재 틀 안에서 종헌종법대로 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해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계종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 사퇴 시 60일 이내에 총무원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 중앙종회의 임기는 오는 11월 초까지이며, 10월에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향후 60일 이내에 총무원장을 선출할 경우, 현 체제에서 선거가 이뤄지는 셈이다.

총무원장 선거는 중앙종회의원들과 각 교구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이 투표권을 가진다.

비주류권에서는 설정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뽑은 현 중앙종회 등에도 책임이 있다며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22일 열리는 원로회의에 중앙종회를 해산하고 비상혁신기구를 구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원로회의에서 중앙종회 해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오는 26일 열릴 전국승려대회에서 개혁방안을 결의한다는 방침이다.

승려대회 봉행위원회는 재가자(출가하지 않은 불교 신자) 종단운영 참여 확대, 사찰 재정 투명화·공영화, 총무원장 직선제 도입 등을 개혁방안으로 제시했다.

불교개혁행동 등 종단 개혁을 요구하는 재야불교단체는 설정 스님 퇴진 국면에서 자승 전 총무원장을 겨냥하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사찰방재시스템 세금 횡령 의혹과 관련해 자승 전 총무원장에 대한 공개조사를 촉구하며 3천배와 삭발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원로회의와 승려대회 등을 통해 현 구도를 뒤집진 파격적인 개혁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정 총무원장 퇴진으로 동력이 떨어졌고,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등 종단 주류 세력의 견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26일 조계사에서 교권수호 결의대회를 열어 승려대회에 대응한다.

설정 스님은 지난 16일 조계종 사상 초유의 총무원장 불신임안 가결 이후 22일 원로회의 인준을 앞두고 스스로 퇴진하는 길을 택했다.

설정 스님은 21일 기자회견에서 "1994년 개혁 당시 법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잘못된 부분을 변화시키기 위해 종단에 나왔지만 뜻대로 이루지 못하고 산중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총무원을 빠져나가 조계사 대웅전에서 참배했다.

일부 신도들은 "힘내세요", "건강하십시요" 라고 외치며 눈물을 흘렸고, 설정 스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후 설정 스님은 총무원 종무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차에 올라타고 수덕사로 향했다.

1942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설정 스님은 1955년 수덕사에서 혜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 조계종단 개혁회의 법제위원장을 맡았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맡았다.2009년 덕숭총림 수덕사 제4대 방장으로 추대돼 후학을 기르다 지난해 11월 1일 임기 4년의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