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한국 떠나는 외국계 로펌… 美 심슨대처바틀렛 "철수"

국내시장 독식 걱정했는데
외국로펌, 수익성 악화에 첫 철수

법률시장 개방 6년 만에 떠나
일감 줄자 핵심인력 대거 이탈
▶마켓인사이트 8월21일 오후 3시51분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대형 로펌 심슨대처바틀렛이 한국에 진출한 외국 법무법인(로펌) 중 처음으로 국내에서 철수한다. 한국 법률시장 빗장이 풀려 외국 로펌이 대거 밀려들어온 지 6년 만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28개 외국 로펌 중 다수가 영업 부진을 겪고 있어 철수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심슨대처는 연내 한국사무소를 닫기로 결정하고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앞으로 한국 관련 업무는 홍콩사무소가 담당하기로 했다.

심슨대처는 미국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펌이다. 2012년 한국 법률시장 개방 후 외국 로펌 중 네 번째로 한국사무소를 열었다. 최근 국내외 로펌 간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일감이 줄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심슨대처 외에 한 영국계 로펌도 핵심 인력이 이탈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슨대처바틀렛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로펌이다. 미국 법률시장 전문매체 아메리칸로이어에 따르면 심슨대처의 지난해 파트너변호사 1인당 수익은 348만5000달러(약 40억원)로 전 세계 로펌 중 1위였다. 심슨대처는 블랙스톤, KKR 등 대형 사모펀드(PEF)의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을 도맡아 미국 인수합병(M&A) 자문 시장의 최강자로 통한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구글(2004년) 테슬라(2010년) 페이스북(2012년) 알리바바(2014년) 등 초대형 기업을 자문했다.

한국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의 해외 채권 발행을 전담하며 유명해졌다. 2012년 국내에 상륙한 뒤 현대자동차와 한국전력의 해외 채권 발행,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IPO, KKR-어피너티 컨소시엄의 오비맥주 매각 등 굵직한 거래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외 로펌 간 치열한 경쟁 속에 높은 벽을 실감한 채 철수를 결정했다. 심슨대처뿐 아니라 여러 외국계 로펌이 실적 부진으로 대표급 변호사가 교체되고 핵심 인력이 국내 로펌으로 빠져나가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2012년 국내 법률시장 개방 후 해외 로펌들이 고급 법률서비스를 앞세워 한국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지만 현재까지 진출 성과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심슨대처 한국사무소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근본적인 이유는 외국계 로펌이 맡을 수 있는 일이 일부 자문 업무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외국계 로펌은 국제중재, 크로스보더(국경 간) M&A, 해외 채권 발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외국법 관련 자문만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28개에 달하는 외국계 로펌이 경쟁하다 보니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소송을 포함한 종합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대형 로펌에 비해 영업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심슨대처는 국내 기업의 해외 채권 발행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았는데, 최근 일감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클리어리고틀립에 일부 고객을 빼앗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법률시장 구조상 28개나 되는 외국계 로펌이 모두 살아남기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최근 3단계 시장 개방을 통해 외국계와 국내 로펌이 합작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외국계 로펌 지분은 49%까지로 제한되는 데다 국내 로펌이 굳이 외국계와 합작사를 설립할 필요성이 적어 국내 법률시장의 판을 흔들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동훈/황정환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