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골드의 경제학: 트럼프, 터키, 그리고 이란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금의 추락은 최근 월스트리트의 화제였습니다. 터키발 신흥시장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값이 강력한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온스당 1200달러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랬던 금값이 21일(현지시간) 오랜만에 안전자산으로 빛을 발하며 오르고 있습니다. 신흥국 위기 가능성에도 하락하던 금 값을 되돌린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트럼프 대통령의 전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유죄를 인정하고 플리바게닝(피고가 유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하는 대가로 감형을 받는 것)에 나선 겁니다.

이 뉴스가 알려지며 오후 1시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를 기준으로 2873.23까지 올라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던 뉴욕 증시가 미끌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S&P500 지수는 2862.96에 마감됐습니다.

장이 마감된 현재 다우 선물과 S&P 선물은 내리고 있습니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로 10년 이상 해결사 역할을 해온 코언은 이날 “한 후보의 지시로 선거법을 위반했다” “그 후보를 위해 (누군가에게) 13만달러를 지불한 뒤 (그 후보로부터) 되돌려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미국 검찰은 "코언의 지불은 그 후보의 알려진 혼외정사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날 대선 선거운동본부장이었던 폴 매나포트도 탈세 등의 혐의로 유죄로 평결됐습니다.내린 건 증시 뿐이 아닙니다. 달러화도 미끌어졌습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강달러, 고금리를 비난한 효과에 그의 정치적 위기 가능성까지 불거지자 ICE 달러인덱스는 이날 0.7%나 급락해 94대까지 떨어졌습니다.

반면 달러 강세에 힘을 못쓰던 금 값은 올랐습니다. 다시 온스당 1200달러로 올라서며 1주일래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금 값 강세는 트럼프가 겨냥하던 적국, 터키와 이란이 모두 좋아하는 겁니다. 사실 지난 일주일간의 금 가격 하락은 이들 국가와 관련이 큽니다.

터키는 금을 많이 가진 나라입니다. 외환보유액 약 1000억달러 중 20%가 금입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달러 확보를 위해 상당한 금을 팔아치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금 가격 하락 뒤에는 달러 강세뿐 아니라 금 매도량 자체가 많았던 이유도 있습니다.
금 생산국도 아닌 터키가 금을 많이 보유하게 된 건 이란 때문입니다. 과거 이란 핵협정 체결 이전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던 이란과 원유 거래를 하기 위해 금을 사모았던 겁니다.

당시 터키는 달러를 건네지 못하자, 대신 국제 시장에서 금을 사서 원유 값으로 이란에 건넸습니다. 물론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값에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터키에도 매우 유리했죠.

이렇게 거래하다가 미국에 딱 걸려서 작년 9월 자페르 차을라얀 전 터키 경제장관과 쉴레이만 아슬란 전 할크은행장 등 9명이 미국 뉴욕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자라브와 하칸 아틸라 할크은행 부행장은 현재 구속 상태입니다.

터키가 이번 위기의 도화선이 된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을 구금한 건 바로 자라브와 아틸라 구속에 대한 대응 조치였습니다. 이들의 구속 당시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의 자라브 수사에 '숨은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었습니다.이날 코언의 플리바게닝은 모든 걸 바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습니다. 위기에 처했던 터키는 형편이 나아지게됐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