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 "상봉 끝났습니다" 차마 발걸음 못떼고 오열

3시간 작별상봉…"건강해라" "오래 살아 다시 만나자" 당부
'고향의 봄' '아리랑' '반갑습니다' 함께 부르며 슬픔 달래
"상봉이 모두 끝났습니다."상봉 마지막 날인 22일 금강산호텔에 작별상봉 종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남북의 가족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아쉬움의 눈물만 쏟아냈다.

한신자(99) 할머니와 북측 두 딸은 연회장을 떠나지 못하고 손을 잡은 채 울기만 했다.어렵사리 연회장 입구까지 이동한 뒤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더는 움직이지 않으려 했고 딸들도 어머니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

결국 북측 지원인력들까지 설득에 나선 뒤에야 모녀는 언제 다시 얼싸안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 헤어졌다.

상봉 종료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서 남북의 가족들은 차오르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로 달랬다.이종훈(82) 씨의 북측 조카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라는 가사의 노래를 반복해 부르면서 주변 테이블의 가족과 함께 춤도 추며 아쉬움을 달랬다.

노래는 '고향의 봄', '반갑습니다'로 이어졌고 노래를 부르는 일부의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아리랑'을 부르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이기순(91) 할아버지는 북측 아들 리강선(75) 씨를 끌어안고 웃으면서 "나 가짜 아버지 아니야. 너 아버지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들은 "건강하고 오래 사시라요.

그래야 또 만나지"라며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했다.

작별상봉에서 81세 북측 여동생 순옥 씨가 "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라고 달래도 88세 오빠 김병오 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침착하려고 애쓰던 여동생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10분 넘게 남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이고'라며 탄식만 내뱉었다.

북측 손자 리 철(61) 씨는 작별상봉장에 나타난 권석(93) 할머니를 보자마자 손을 잡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도 손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동안 손을 어루만져줬다.

할머니와 동행한 남측 아들이 "철아, 울지마"라고 달래면서도 본인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춘식(80) 씨와 북측 두 여동생은 작별상봉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김 씨는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라면서 여동생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

배순희(82) 씨는 북측 언니와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오래 살고, 서로 다시 만나자"라는 배씨의 말에 언니도 "다시 만나자"라고 재회를 기약했다.

작별상봉에서는 당부의 말도 많았다.

한신자 할머니는 북측 두 딸을 양옆에 앉히고 "찹쌀 같은 것이 영양이 좋으니 그런 걸 잘 먹어야 한다", "○○에는 꼭 가봐야 한다, 알겠지"라고 당부했고 딸들은 어머니 곁에 바짝 다가앉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건강을 당부하는 가족들도 많았다.

함성찬(93) 할아버지는 북측 동생 함동찬(79)씨의 손을 꼭 잡고 "건강이 최고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금섬(92) 할머니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북측 아들 상철(71) 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작별상봉이라 그런지 상봉 시작 전 연회장에 미리 나와 기다리는 북측 가족들은 애가 타는 모습이었다.

전날 건강 문제로 단체상봉에 참여하지 못한 김달인(92) 할아버지의 북측 여동생과 조카는 현장 관계자들에게 김 할아버지가 작별상봉에 나오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혹시나 김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 하는 걱정에서였다.

김 할아버지가 도착하자 여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오빠를 자기 옆에 앉혔다.

작별상봉은 점심을 포함해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당초 2시간이었다가 남측 제의를 북측이 수용해 3시간으로 늘었다.남측가족들은 작별상봉을 마친 뒤 북측 가족을 뒤로하고 오후 1시 30분 금강산을 떠나 귀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