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 차창에 손맞댄 눈물의 이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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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두드리며 마지막 인사…손바닥에 "장수하세요" 글씨
이산가족 상봉단, 2박3일 일정 마치고 南으로 귀환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또다시 긴 이별을 감내해야 할 이산가족들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가족들과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2박 3일간의 상봉행사가 모두 끝난 뒤 22일 오후 1시께 남측 이산가족들이 귀환 버스에 올라타자 북측 가족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자 버스 창문에 줄지어 섰다.
한신자(99) 할머니의 북측 딸 김경영(71) 씨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버스) 몇 번, 몇 번이에요"라고 외치며 한복 치마를 발목 위까지 걷어 올리고 다급히 뛰어나왔다.
한신자 할머니도 딸들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창문을 두드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마침내 딸이 도착하자 모녀는 서로 창문을 격하게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김경영 씨는 결국 "어머니, 어머니, 건강하시라요"라며 오열했다.
김경영 씨의 언니 김경실(72) 씨도 곧 도착해 버스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라고 통곡했다.한신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고 다독였지만, 자신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창문이 열리지 않아 입 모양으로 대화할 수밖에 없어 아픔을 더했다.
북측 딸들의 키보다 버스 창문이 높자 남북 양측의 관계자들이 할머니들을 안아 올려 모녀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할 수 있었다.북측 딸들은 출발하는 버스를 계속 따라가려다 북측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서야 걸음을 멈췄지만, 오열은 계속됐다.최동규(84) 할아버지의 북측 조카 박춘화(58) 씨도 버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니. 통일되면 이런 거 안 하잖아. 이게 뭐야 이게!"라며 울부짖었다.
고호준(77) 할아버지는 북측 가족과 차창에 손을 맞대며 오열하다 차문이 잠시 열리자 잠시 내려 북측 조카를 부둥켜안았다.
고호준 할아버지가 "어이구 자슥아. 어떻게 떠나니. 떼어놓고 가려니 발이 안떨어진다"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측 조카는 "삼촌. 울면 안 됩니다.
통일이 되면 건강하게 다시 만납시다"라며 울면서 위로했다.
권석(93) 할머니의 북측 손자 리철(61) 씨는 손가락으로 버스 창문에 '조국통일'이라고 쓴 뒤 손을 흔들었고, 차 안에 있던 남측 가족들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김병오(88) 할아버지도 버스 밖 북측 여동생 김순옥(81)을 향해 하트를 그렸고 여동생도 하트로 화답했다.
이관주(93) 할아버지의 조카 리광필(61) 씨는 창문에 막혀 소리가 들리지 않자 손바닥에 볼펜으로 "장수하세요"라고 써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관주 할아버지는 울다 끝내 선글라스로 눈을 감췄다.남측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는 오후 1시28분께 금강산을 출발, 오후 3시15분께 동해선 육로를 통해 귀환했다.
/연합뉴스
이산가족 상봉단, 2박3일 일정 마치고 南으로 귀환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또다시 긴 이별을 감내해야 할 이산가족들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가족들과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2박 3일간의 상봉행사가 모두 끝난 뒤 22일 오후 1시께 남측 이산가족들이 귀환 버스에 올라타자 북측 가족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자 버스 창문에 줄지어 섰다.
한신자(99) 할머니의 북측 딸 김경영(71) 씨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버스) 몇 번, 몇 번이에요"라고 외치며 한복 치마를 발목 위까지 걷어 올리고 다급히 뛰어나왔다.
한신자 할머니도 딸들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창문을 두드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마침내 딸이 도착하자 모녀는 서로 창문을 격하게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김경영 씨는 결국 "어머니, 어머니, 건강하시라요"라며 오열했다.
김경영 씨의 언니 김경실(72) 씨도 곧 도착해 버스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라고 통곡했다.한신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고 다독였지만, 자신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창문이 열리지 않아 입 모양으로 대화할 수밖에 없어 아픔을 더했다.
북측 딸들의 키보다 버스 창문이 높자 남북 양측의 관계자들이 할머니들을 안아 올려 모녀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할 수 있었다.북측 딸들은 출발하는 버스를 계속 따라가려다 북측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서야 걸음을 멈췄지만, 오열은 계속됐다.최동규(84) 할아버지의 북측 조카 박춘화(58) 씨도 버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니. 통일되면 이런 거 안 하잖아. 이게 뭐야 이게!"라며 울부짖었다.
고호준(77) 할아버지는 북측 가족과 차창에 손을 맞대며 오열하다 차문이 잠시 열리자 잠시 내려 북측 조카를 부둥켜안았다.
고호준 할아버지가 "어이구 자슥아. 어떻게 떠나니. 떼어놓고 가려니 발이 안떨어진다"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측 조카는 "삼촌. 울면 안 됩니다.
통일이 되면 건강하게 다시 만납시다"라며 울면서 위로했다.
권석(93) 할머니의 북측 손자 리철(61) 씨는 손가락으로 버스 창문에 '조국통일'이라고 쓴 뒤 손을 흔들었고, 차 안에 있던 남측 가족들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김병오(88) 할아버지도 버스 밖 북측 여동생 김순옥(81)을 향해 하트를 그렸고 여동생도 하트로 화답했다.
이관주(93) 할아버지의 조카 리광필(61) 씨는 창문에 막혀 소리가 들리지 않자 손바닥에 볼펜으로 "장수하세요"라고 써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관주 할아버지는 울다 끝내 선글라스로 눈을 감췄다.남측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는 오후 1시28분께 금강산을 출발, 오후 3시15분께 동해선 육로를 통해 귀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