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실리콘밸리 간 한국인들 왜 일이 즐겁다고 할까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김혜진 박정리 송창걸 등 지음
스마트북스 / 324쪽│1만6000원
월요일만 그런 게 아니다. 늘 피곤하고 힘들다.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 팀원들은 경쟁 상대다. ‘잘릴 수 있다’는 윽박도 듣는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겪는 일상이다. 회사에 출근해 일하는 게 행복할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저자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지난해 2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혁신과 일하는 문화 등을 공유해보자고 모인 이들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5명의 저자 중 공과대학 졸업생은 오라클에서 소프트웨어 품질시험 자동화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송창걸 씨뿐이다. 기업공개(IPO) 전문 회계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박정리 씨, 페이스북 UX 디자이너인 이종호 씨, 에어비앤비 페이먼츠팀 엔지니어인 유호현 씨, 유전자 분석 바이오테크 회사인 카운실에서 근무하는 김혜진 씨 모두 영문학 전공자다.

저자들뿐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으로 설명한다. 우선 잘 먹고 잘 쉬기 때문에 1단계인 생리 욕구가 충족된다. 저녁엔 다들 빨리 집에 가기 때문에 함께 술 마시고 놀 사람이 없다. ‘힘든 상황에서 불가능한 임무를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시간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하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는다. 2단계는 안전 욕구다. 실리콘밸리에서 직원은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임무’를 함께 해결해가는 파트너기 때문에 ‘자른다’는 협박은 무의미하다. 소속감을 느끼고 좋은 팀워크를 이룰 때 더 큰 성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3단계 애정·소속 욕구가,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수시로 구체적으로 얘기해주기 때문에 4단계인 존경의 욕구가 자연스레 채워진다.

사업적으로는 이들 기업이 어떤 측면에서 특출날까. 구글, 페이스북, 우버, 에어비앤비를 탄생시킨 기술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세계에 비슷한 아이디어로 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도 많다. 저자들은 이들의 강점이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에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롭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책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시대가 저물고 있는 오늘, 기업이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하는지, 직원을 어떻게 대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파고든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업 문화, 적절한 대우와 보상, 한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공백을 최소화하는 정보공유시스템이라는 비결이 책의 곳곳에 다양한 사례와 함께 스며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또는 취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와 구직자뿐 아니라 즐겁게 일하고 싶은 직장인, 앞서가는 조직 문화를 습득하고 싶은 기업인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